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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5 지하철역 교통카드 단말기 오류나면 어떻게 하세요? 5

#1

때는 12월12일 토요일.

집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에서 지하철 환승을 한 나. 종각역까지 와서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댔다.

'삑삑삑~!'
에러다. -_-

옆 칸으로 옮겨 다시 나가고자 했다.

'삑삑삑~!!'
또 에러다. -_-;;

그러자, 자원봉사대 복장을 하신 할머니가 오신다.

할머니 : "왜 그러세요?"
붕붕 : "나가려는데 단말기 오류가 나네요."
할머니 : "제가 처리해 드릴께요. 카드 줘 보세요."


교육을 단단히 받으신 듯 하다. 손자뻘 되는 사람한테 꼬박꼬박 존칭을 쓰시는 자원봉사 할머니.
내 교통카드를 받아서는 어디론가 향하시는데...

#2

'삑~!!'

할머니는 옆 칸 입구의 단말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단말기를 가져다 대셨다.
예전에 종이승차권 쓰던 시절도 이런 일이 생기면 대개 관리자용 패스가 등장하곤 했으니, 그 단말기도 그런 오류를 정산하는 단말기려니 생각했다.
할머니는 다시 카드를 내게 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할머니 : "이제 다시 한번 찍어보세요."
붕붕 : "네" (카드를 찍는다.)


'삑~!!'
그렇게 출구를 나온 나는 할머니께 다가갔다.
 
#3

아까 자원봉사 할머니가 내 카드를 단말기에 대는 순간,
나는 보았다.
단말기에 찍힌 선명한 붉은 숫자 '900'을.
그것은 요금 900원이 부과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이렇게 물었다.

붕붕 : "할머니, 감사한데요. 저는 지금 환승을 해서 왔는데, 할머니께서 카드를 찍으시는 바람에, 전 졸지에 900원을 손해보고 말았네요, 어쩌죠?"


그러자, 이 할머니, 생글생글 웃으시며, 내 입장에서 볼 때, 어처구니 없는 말씀을 하신다.

할머니 : (매우 상냥하게 웃으시며) "손해봐봐야 900원인걸 뭐..."
붕붕 : "아니 할머니, 900원이 아니라 90원이라도 왜 이유없이 그냥 손해를 봐요..."


할머니는 그냥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웃기만 하신다.

#4

난 알고 있다.
이건 이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할머니는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돕기 위해 당신이 알고 있는 한 최선을 다해주셨다는 걸.
그래서, 그 할머니에게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할머니 : "버스나 환승하면서 카드 잘못 찍은 거 아니에요?"
붕붕 : "이건 분명히 단말기 오류란 말이에요. 여기까지 오면서 카드 분명히 다 찍은 거 확인도 했구요. 나 역장님 만나야겠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교통카드 사용내역은 인터넷에서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어제 사용일까지만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규명하려면 하루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다음날은 일요일이다.....-_-;;;

역장님을 만나야겠다는 내 말에 난처해 하시는 할머니께 난 이렇게 말씀드리고 역을 나왔다.

붕붕 : "걱정마세요, 할머니. 제가 역무실에 확인할께요. 감사합니다."



#5

시간은 흘러 월요일.
T-money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런 오류는 역에서 정산작업을 거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해당 역으로 가서 직접 해결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나는 몰랐다 치자.
그 할머니는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역무원들은 그 노인분들께 그런 사실을 교육시키지 않았을까??
교육시켰다면,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는지에 대해 왜 관리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6

그리고 오늘.

종각역에 도착해서 역무실을 찾아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역무원이 내게 이렇게 따지듯 묻는다.

역무원 : "손님께서는 이 일 말고도 역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디로 오셔야겠어요?"


이건 지금 왜 그 당시에 역무실로 안오고 이제와서 따지느냐는 식이다.
물론 불쾌하겠지.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게 지금 나한테 짜증낼 일인가. 손해를 본 건 엄연히 난데.
나 역시 불쾌감을 애써 참지 않았다.

붕붕 : 그럼 지금 개찰구에 계시는 자원봉사 할머니들은 이 곳에서 교육해서 배치하신 분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분들이 실수해서 벌어진 사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사흘이 지나서 이 곳에 온 것은 혹시라도 그것이 나로 인한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고, 그게 내 실수가 아니란 걸 확인한 다음에 오게 된거란 말입니다~!!

 

역무원 : "잠시 저 좀 따라와 보세요."


그리고는 역무실을 나가는 역무원.
저 사람,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걸까?

#7
승강장 출입구에 서서 그 역무원은 내게 말했다.

역무원 : "손님께서 겪으신 일은 분명히 저희들의 실수로 빚어진 일입니다. 따라서, 요금은 환불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역무원 : "젊으신 분이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건데, 역 단말기 밑에는 이렇게 단말기 오류 코드 목록이 있어서 코드번호에 따라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단말기에 오류가 생겼을 경우에는 이 코드를 반드시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역무원 : "정부시책에 따라서 노인분들을 자원봉사자로 고용은 하는데, 노인분들이라 그런지(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아무리 교육을 해도 잊어버리신단 말입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꼭 단말기 오류 코드를 확인하시고, 그 할머니들께 역무원을 불러 달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리고는 자기 주머니에서 현금 900원을 꺼내 내게 돌려주었다.
부당청구에 대한 환불절차도 없이, 그렇게 상황은 끝이 났다.

그런데, 이 상황.... 정말 끝난 것일까?

그 역무원은 시종일관 자신이 짜증 났음을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서비스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그 역무원은 내게 '분명히 단말기 오류코드가 있는데 왜 그걸 확인도 안하고 그런 일을 만들었느냐'는 식의 핀잔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천만 서울 시민 가운데, 그 단말기 오류코드가 단말기 밑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지하철 개집표기 장애코드. 이제는 이런 코드 외에 한글안내가 친절하게 나온다. @2022.

.

요즘 서울메트로는 스토리텔링 광고도 잘하던데, 정책홍보도 그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나도 당하면 당황스러운 일인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겪으시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900원 손해보고 말지 않을까.

부당청구 되었던 900원을 받아들고 나왔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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