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는 새벽, 차 안에서 굉장히 낯선 구조물을 하나 보았다. 광화문 광장 맨 끝자락에 놓은 20~30M는 족히 됨직한 저 큰 구조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세종로로 들어서니 옆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스노보드대회를 한단다. 서울 중심 한 복판에서. 발상 자체가 기발함을 넘어서 뭔가 모를 황당함을 가져다 준다.

낯설어라, 서울 한 복판의 스노보드대회

내 눈에 낯설다는 느낌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스노보드대회를 위해 설치해놓은 구조물을 보면서 난데없이 그 앞에 앉아계신 세종대왕이 왜 그리도 측은하고 안 쓰럽게 느껴지던지. 국제대회니까 외국 출전자도 많을텐데, 전 세계가 칭송하는 국가 지도자의 동상 뒤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재주를 넘으며, 심지어는 발길질까지 해대는 모양을 연출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인 듯 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황당해라, 세종대왕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발차기와 재주넘기

뚝딱뚝딱 우리나라는 설치구조물 만들어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행사를 위한 무대셋트 설치부터 공사현장 지지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뚝딱뚝딱 짓고 만드는데는 하여간 검증된 실력을 뽐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높은 구조물을 만들었다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 한 복판인가, 그것도 도심 한 가운데 세종로 광화문 광장이다. 많은 차량과 유동인구로 늘 붐비는 곳.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연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 이 곳을 찾는다. 스노보드대회가 열리면, 관중들도 많이 올텐데.... 그럼 애먼 서울시민만 교통지옥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왜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 스포츠도 아닌, 고급 레저스포츠 행사 때문에 교통지옥이라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걸까.

영화 '국가대표'가 꽤 인기 있었다고 한다. 스키점프라는 비 인기종목 선수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에 편승해서 도시를 알리고자 유사한 스노보드대회 행사를 기획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럼 그토록 스키점프 선수들이 간절히 원하던 스키점프시설도 저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스키점프시설은 무주리조트에 단 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생긴지 10년쯤 된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스키점프시설을 요청해도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 안해주던 정부(그것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에서, 그 오만가지 핑계를 뒤로하고 그 웅장한 시설을 도심 한 복판에 내놓는 건, 비 인기종목의 설움 속에 묵묵히 자신의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일은 아닐까. 무한도전이 봅슬레이 국가대표 되었더라면, 북한산에 봅슬레이 경기장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이다.

장하도다, 무한도전이 북한산을 살렸구나

세종대왕 뒤통수에 하이킥 날릴 생각 하기 전에, 생각 좀 하자. 그 스노보드대회가 천만 시민에게 불편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거행해야할만큼 국익이나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만약 객관적으로 그러하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88올림픽때 소매치기도 영업(?)을 중단했다던 한민족이다. 그리고, 비싼 예산 들여 조성한 광장이면, 모두를 위해 유익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집회나 시위는 컨테이너 쌓아가며 막아대면서,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스키점프대회장으로 공공시설을 줏대없이 굴려대면서 무슨 놈의 민주주의 타령이냐, 나라팔아 돈 버는 장삿꾼이지. 이 행사 기획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다면... 오세훈, 당신도 정말 명박스럽기 그지 없다. 가뜩이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거가 마냥 불편한 광화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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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 없는 소식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에 들러 세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2007년 11월,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시아권 국가 언어는 일본어, 중국어 서비스가 전부였다. 나는 안내직원에게 "왜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내직원은 "외국어 안내는 이게 전부"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GDP도 낮고, 또 일본 문화의 원류는 한국의 문화인데, 이런 후진국들에 대한 안내는 하면서, 한국을 위한 안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안내원은 매우 난처해 했다. 내가 너무 민감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을거고, 또 내 영어가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안되는 것이 어찌 안내 직원 탓이겠는가.

그랬던 대영박물관에서 이제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제공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때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참 흐뭇하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이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조선 당백전을 만나다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유적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유적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구경 하다가, 나는 맨 마지막 관람코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고대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화폐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의 관리 아래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도록 허락해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당백전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유물을 보다니. 난 너무 기쁜 나머지, 은행근무경력이 있다는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이 동전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동전'이라고 자랑을 했다. 그랬더니 그 자원봉사 할머니는 나에게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지금도 그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Are you Japanese? (일본 사람이에요?)"

이게 웬 지렁이 이단 옆차기 하는 소리냔 말이지. 난 한국사람임을 밝혔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들을 지도하는 사회과 강사인데,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모르고 어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겠냐는 나름의 전문성까지 부각 시켜가며, 설명을 했건만, 이 자원봉사 할머니는 내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지나가던 한 관람객이 보았다. 그 관람객은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원봉사 할머니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이 한국 젊은이가 이 동전을 자기네 나라 동전이라고 우기는군요."

그 관람객은 내게 진짜 그렇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이 관람객, 너무나도 당연한 듯 이야기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맞다고 말이다. '남대문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안 가 본 사람이 더 잘 안다'더니, 딱 그 짝이다. 꼭 다리 세 개 가진 사람들 사이에 두 다리만 가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조선의 당백전을 일본의 것이라 알고 있는 대영박물관

한국에 대한 역사왜곡이 아무리 심하다 한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식민역사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백전은 조선, 중국, 일본 모두가 발행된 적이 있는 화폐이다. 그 중 조선의 당백전과 일본의 당백전은 그 모양이나 색깔부터가 판이하게 달라서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건 역사를 공부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제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된다고 하니, 그러한 역사 왜곡도 바르게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반크, 도와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좌측이 조선의 당백전, 우측이 일본의 당백전입니다. 일본의 당백전은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원형의 조선의 당백전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본 건 분명히 원형이었다구요~!!! ㅡO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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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격상(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시키려는 경우를 흔히 본다. TV 드라마를 연출하는 PD를 '감독님'이라 호칭한다든지, 자신보다 먼저 연예계에 데뷔한 사람들을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연예인을 '광대' 혹은 '딴따라'라고 격하시키던 옛날과 비교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스스로를 '공인(公人)'이라 칭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름지기 공인이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임을 생각할 때, 언제부터 연예활동이 공적인 활동으로 취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연예인들 사이에서 나름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은 사회의 인식변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의 행동변화를 통해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꽤 대견한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인식은 그다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연예인을 광대 또는 딴따라로 여기는 과거의 관념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탓이 더 크다. 특히 공인(公人)으로 자처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일관성은 더욱 더 찾아보기 어렵다.

연예인들의 말 뿐인 공인의식

원더걸스의 소희와 선미가 그룹의 미국진출을 위해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원더걸스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오래전부터 원더걸스의 미국진출을 기획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자퇴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언론을 통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였으며, 학벌보다는 기회를 선택했고, 학업은 포기한 것이 아니며 미국에서 학업을 지속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것은 아니며, 위법성을 논할 것 역시 되지 못한다.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이들의 행동은 비난받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연예인들이 스스로 말하듯 이들 역시 공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이들이 청소년층에 속하고 이들 행동 하나하나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함을 감안할 때 그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심각성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청소년들 사이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육과정 정도는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음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이 의도하였든 아니든 이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원더걸스의 자퇴, 공인의식을 고려한 결과인가

공인에 대해 연예인들은 '스스로의 행동이 사회 혹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사람'이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연예인들의 대중노출이 굉장히 많아진만큼 이같은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사회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서 그들의 사회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원더걸스를 기획한 박진영은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칭하면서 자신은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명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방송을 통해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박진영 자신의 견해일 뿐, 이것을 다른 연예인들(비록 그들을 자신이 기획하고 있다 하더라도)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공인이라고 생각하고 공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공인의 기준은 스스로의 모든 행동에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연예인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사회나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각종 범죄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때만 적용되는 공인의식은 그 진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모든 행동에 대한 영향 고려하는 모습 아쉬워

연예인을 공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는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 공인으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깊은 사려를 가지는 것이 인터뷰할 때 앵무새처럼 공인타령을 해대는 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원더걸스 소희와 선미의 자퇴가 경솔하게 느껴지고 아쉽기만 한 이유는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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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줄곧 '국보1호'라고 배워왔던, 지금까지도 늘 '국보1호'라고 가르쳐왔던 숭례문이 한 사람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가 불 타버렸다.'라는 지극히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TV를 지켜보면서 숭례문이 붕괴되는 그 순간, 내 가슴도 같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아~!!"하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왔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 말마따나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숭례문은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국보1호 숭례문이 타 버린 현실이 아니다. 어찌보면 숭례문이 타 버린 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사라진 숭례문

숭례문이 국보1호가 되는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첫발을 내딛은 곳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야심이 숭례문을 조선 고적1호로 지정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옴으로써 우리의 국보1호는 시작된 것이고보면, 국보1호 그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이자 긍지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한, 196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숭례문은 그 원형을 잃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숭례문은 이미 조선시대 당시의 공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하고, 그 모양을 흉내낸 '이미테이션'이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일임에 분명하지만, 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놓고볼 때, 숭례문은 어쩌면 커다란 장애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상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가 국보1호로 존재했다는 것, 그것이 이미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심하게 훼손한 것은 아니었을까.
국민들 역시 숭례문이 '국보1호'라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숭례문을 볼 때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존재에 마음 깊은 뿌듯함을 느껴왔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애초부터 숭례문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희미했던 사람들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놓고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약간의 '오버'처럼 보이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애초부터 희미했던 국보1호로서의 가치와 의미

모두 타 버린 뒤에야 국보1호의 자존심을 찾는 국민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번 화재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신문과 뉴스를 장식하는 내용들을 보라.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당시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던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해서, 문화재청은 그들대로, 중구청과  소방방채청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사건의 원인규명보다는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함에 대해서만 소명하기에 급급하다. 어찌 이것이 단지 이번 사건에만 그치는 문제랴.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삼풍백화점이 박살나도 누구하나 진지하게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대통령이 된다는 이명박 당선자는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1차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 왜 그는 스스로 책임지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걸까. 그저 매사를 BBK 다루듯 하는 그에게 국가의 5년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숭례문 화재보다 더 절망스럽다.

책임회피하는 이명박, 모든 일을 BBK 다루듯

그 가치의 중요성 여부를 떠나 숭례문은 서울이 가지고 있었던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외국인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600년 이상을 지켜온 목조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 자랑이 사라져버린 지금, 국민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나.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다시 복원하는 것보다, 모든 국민이 자랑스러워 할 국가의 근본정신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 아닐까. 주변의 모든 일에 책임의식을 갖는 일, 모든 국민의 애국심을 받기에 합당한 국가를 만드는 일, 이것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하기 전에 되살려야 할 우리의 얼임을 이번 화재로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도 그 가치를 실제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우리의 국보1호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산화함으로써 우리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국보1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숭례문이 가지는 국보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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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에서 비껴간 비난

두 방송인의 방송실수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하나는 뉴스 말미에 웃음을 터뜨린 MBC 문지애 아나운서이고, 또 하나는 폭소클럽2에서 가슴노출논란을 불러일으킨 개그맨 곽현화이다. 하지만, 왜 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조금 허탈하다. 이들의 비난이 나를 허탈하게 하는 이유는 비난의 대상인 이들이 문제의 원인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순히 원인제공을 했을 뿐, 비난의 중심에 서야 할 아무런 이유도 보이지 않는다.

우발적인 웃음, 반사적인 트집

우선 문지애 아나운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의 웃음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그날의 뉴스에 이천참사를 비롯한 이른바 무거운 뉴스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 무거운 뉴스와 웃음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네티즌들은 '어떻게 그런 심각한 뉴스를 전달하고 웃을 수가 있느냐'라고 비난한다. 언제부터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가 뉴스 하나하나에 자신들의 감정이입을 강요 당해왔는지 모르겠다. 뉴스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으로 인해 이천참사가 한갖 해프닝처럼 느껴졌다면 모를까, 문지애 아나운서에게 마녀사냥식의 비난을 퍼부어대는 것은 비난이기 이전에 '트집'이다. 그의 웃음이 의도적인 미소가 아닌 우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비난이 반사적인 트집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가슴노출, 누구의 관심이었나

개그맨 곽현화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출연프로그램을 보는 가운데에서 그녀의 가슴노출을 의심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더욱이 이것은 녹화 프로그램이다. 대개의 경우 가슴노출 해프닝이 있을 때는 녹화장에서 이미 기사화 되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녹화장도 아니고 방송이 나간 후 기사화 되었다. 화면에서 나타난 것을 본 한 네티즌의 지적을 보고 기사화 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미 이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전력을 감안하면, 개그맨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써 곽현화가 입었을 타격은 상상이상이다.

하향 평준화에 익숙한 우리의 습성, 반성해야

비난의 중심에 선 이들은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이슈를 지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문지애 아나운서는 최근 MBC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 출연시키고 있는 신인 아나운서이고, 곽현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기 드문 명문대(이대 수학과) 출신 개그맨이다. 이들이 비난, 아니 트집의 대상이 된 것은 이런 관심요소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는지 네티즌과 기자들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너 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봐' 하는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름지기 바람직한 사람이란,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자신을 발전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을 무작정 깎아내려 그들의 상향에 제동을 거는 하향 평준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나보다 조금 느린 사람과 함께 가기위해 기다려줄 줄 아는 여유, 이것이 평준화가 갖는 궁극적인 목적임을 생각할 때 스스로의 발전에 관심 없는 평준화는 모두를 힘들게 할 뿐이다.
올바른 비판하기 정말 힘들고, 하루에 기사한 건 만들기 힘들다는 것 역시 잘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막가파식이면 곤란하다.

MBC 홈페이지에 문지애 아나운서를 비난했던 이들,
그리고 연말 연예대상식장 포토월에서 있는대로 사진 찍어놓고 이름도 몰랐을만큼 관심도 두지 않았으면서 이번 논란에 지극히 선정적이기만 했던 기자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두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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