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는 새벽, 차 안에서 굉장히 낯선 구조물을 하나 보았다. 광화문 광장 맨 끝자락에 놓은 20~30M는 족히 됨직한 저 큰 구조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세종로로 들어서니 옆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스노보드대회를 한단다. 서울 중심 한 복판에서. 발상 자체가 기발함을 넘어서 뭔가 모를 황당함을 가져다 준다.
낯설어라, 서울 한 복판의 스노보드대회
내 눈에 낯설다는 느낌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스노보드대회를 위해 설치해놓은 구조물을 보면서 난데없이 그 앞에 앉아계신 세종대왕이 왜 그리도 측은하고 안 쓰럽게 느껴지던지. 국제대회니까 외국 출전자도 많을텐데, 전 세계가 칭송하는 국가 지도자의 동상 뒤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재주를 넘으며, 심지어는 발길질까지 해대는 모양을 연출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인 듯 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황당해라, 세종대왕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발차기와 재주넘기
뚝딱뚝딱 우리나라는 설치구조물 만들어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행사를 위한 무대셋트 설치부터 공사현장 지지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뚝딱뚝딱 짓고 만드는데는 하여간 검증된 실력을 뽐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높은 구조물을 만들었다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 한 복판인가, 그것도 도심 한 가운데 세종로 광화문 광장이다. 많은 차량과 유동인구로 늘 붐비는 곳.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연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 이 곳을 찾는다. 스노보드대회가 열리면, 관중들도 많이 올텐데.... 그럼 애먼 서울시민만 교통지옥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왜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 스포츠도 아닌, 고급 레저스포츠 행사 때문에 교통지옥이라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걸까.
영화 '국가대표'가 꽤 인기 있었다고 한다. 스키점프라는 비 인기종목 선수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에 편승해서 도시를 알리고자 유사한 스노보드대회 행사를 기획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럼 그토록 스키점프 선수들이 간절히 원하던 스키점프시설도 저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스키점프시설은 무주리조트에 단 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생긴지 10년쯤 된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스키점프시설을 요청해도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 안해주던 정부(그것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에서, 그 오만가지 핑계를 뒤로하고 그 웅장한 시설을 도심 한 복판에 내놓는 건, 비 인기종목의 설움 속에 묵묵히 자신의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일은 아닐까. 무한도전이 봅슬레이 국가대표 되었더라면, 북한산에 봅슬레이 경기장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이다.
장하도다, 무한도전이 북한산을 살렸구나
세종대왕 뒤통수에 하이킥 날릴 생각 하기 전에, 생각 좀 하자. 그 스노보드대회가 천만 시민에게 불편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거행해야할만큼 국익이나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만약 객관적으로 그러하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88올림픽때 소매치기도 영업(?)을 중단했다던 한민족이다. 그리고, 비싼 예산 들여 조성한 광장이면, 모두를 위해 유익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집회나 시위는 컨테이너 쌓아가며 막아대면서,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스키점프대회장으로 공공시설을 줏대없이 굴려대면서 무슨 놈의 민주주의 타령이냐, 나라팔아 돈 버는 장삿꾼이지. 이 행사 기획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다면... 오세훈, 당신도 정말 명박스럽기 그지 없다. 가뜩이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거가 마냥 불편한 광화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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