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가 최고의 권력자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며, 정부의 수장이기도 하고, 국군을 통수할 권한도 지닌다. 그래서 대통령은 다른 어떠한 지위보다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이 다른 지위가 누리는 것 하나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국무위원들도 모두 하고, 군에서는 장성부터 분대장에 이르기까지 꼭 하는 이것을 유독 대통령은 하지 않는것이 조금은 이상하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임식이다.

왜 대통령은 이임식을 안하는 걸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오전, 나는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을 환송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잠시 환송을 위해 나온 노사모를 비롯한 여러 지지자들에게 짧은 인사한마디를 남기고는 곧바로 KTX 탑승을 위해 탑승장으로 향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이들의 모습은 겉보기에 분명 하나였다. 모두 하나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전통의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인 '노사모',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된 '시민광장', 또 다음카페를 중심으로 모인 '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파티를 준비하는 모임', 언뜻 봐도 세 단체가 각기 저마다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제각각이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 구심점을 가지고 세 단체가 함께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세 단체는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그저 각기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통합 속의 분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더욱 나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나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던 그 순간, 저 쪽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한쪽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축하하는 움직임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전 지도자의 귀향을 환송하는 움직임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보니, 봉하마을에는 호화사저는 없고, 통합만 있었다고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은 그 자체가 축제였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과연 우리는 통합하고 있었던 것일까.

통합 속의 분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대통령 취임식을 이임식과 함께 치루었다면, 새로운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전 지도자를 한번쯤은 실제로 목도했을 것이고, 이전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국정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한번쯤은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나와 함께 서울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취임식 중계를 보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취임식에 참여했던 시민들 역시 서울역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보여주었다면 이 얼마나 멋진 한편의 드라마인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대통령이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크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것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봤을 때처럼 온 국민이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정치가 '쇼'라고는 하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정치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임식과 취임식을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

지난 우리의 역사는 단 한번도 통합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선시대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그랬고, 붕당 간의 정쟁이 그랬다. 현대사에 들어오면 그는 더 분명해진다. 일제 치하에서는 친일과 반일의 반목이 있더니,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놓고 이념간의 갈등이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의 대치, 여기에 영호남의 지역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번도 통합을 해본 적이 없는 굉장히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지도자가 되면 통합을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경우는 드물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에 성공하지 못했다. 실제로 통합의 의지가 있다면, 또 그래야 한다면,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취임식만은 그렇지 못했다. 취임식만 있고 이임식은 없는 현 상황에서는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밀려 쫓겨나는 아주 볼썽 사나운 모양새가 반복될 뿐이다.

이제 이를 실천할 몫은 5년뒤 선출될 18대 대통령 당선자의 몫이 되었다. 이전 대통령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 그가 실천에 옮겨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다음 18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임사와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온 국민이 한 자리에서 함께 듣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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