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권 지폐의 발행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아직 10만원권 발행은 시기상조이며, 5만원권 발행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나, 고액권을 발행하느니 차라리 화폐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10만원권 발행이 취소된 것은 그 모델이 현 정부가 빨갱이로 매도하는 백범 김구 선생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와 뉴라이트가 백범 선생을 10만원권 모델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이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면, 특히 그 일이 정부의 결정이라면, 그 결정에 대한 기대와 효과를 가늠하기 이전에, 그 결정이 어떤 이념을 근거한 것인가부터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한갖 지폐모델까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현 정권과 보수층이 지닌 가치관의 후진성이 무척이나 안쓰럽다. '김구포비아'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과도한 현 정부의 김구에 대한 혐오는 흡사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를 보는 것만큼이나 갑갑하기 그지 없다.

이명박, 이념의 척화비를 세우다.

오늘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이 맘 때쯤 이명박 당시 후보는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말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죽여놓은 것 같다. 하지만, 현 정부가 죽여놓은 것이 어디 경제뿐이겠나. 그와 다른 이념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 역시 모두 다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일단 현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온전히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으로 인한 파장을 염려하기 이전에 자신의 사법처리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18세기 로베스피에르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환생한 듯 여전히 살아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18세기에 급진진보세력이었던 그가 21세기에는 강경보수세력으로 이념의 변화를 보이는 것 뿐이다.

로베스피에르가 환생한 21세기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2008년은 '이념'이라는 단어없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로부터 시작된 이념논쟁은 교육감 선거를 거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문제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것만 따져봐도 정말 그 파장이 엄청나다. 90년대에 이미 종말을 고한 이념논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왜 우리는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나 하는 괴로움도 그 부끄러움과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노래방에서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아는지. 세기를 넘나드는 현 정권의 회귀본능은 1년내내 우리의 말문을 막아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보다 더 심각한 건 그런 그와 함께 앞으로 4년을 더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의 업적이라면, 이렇듯 이념의 척화비 건립과 로베스피에르의 환생으로 대표되지 않을까. 이념의 척화비를 세운 한국의 로베스피에르. 4년 후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이와 같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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