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에 진 결과를 두고 참 말들이 많다. 임창용 선수가 이치로에게 통한의 2루타를 맞지만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길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 컸다. 덕아웃에서 허탈해 하는 김인식 감독의 표정이 그대로 전파를 타 시청자들에게 전해졌고, 급기야 '이치로를 걸러내라'는 사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임창용 선수가 이치로와 승부를 벌인 것으로 밝혀지자 '창용불패' 임창용 선수는 졸지에 역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임창용 선수는 벤치의 사인을 전달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결과보다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우리 대한민국 선수단에 대한 찬사로 준우승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임창용 선수의 실투는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지켜보는 내가 이러하니 본인은 오죽할까. 설사 임창용 선수가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이치로와 정면승부를 벌였다 하더라도, 임창용 선수를 욕하거나 비난할 일은 되지 못한다. 그는 경기장에서 선수로서, 그것도 프로선수로서, 타자와의 승부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최선 다한 임창용, 왜 비난 받아야 하나

임창용 선수의 과거 행적이 그리 고분고분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임창용 선수가 김인식 감독의 사인을 무시하고 이치로와 정면승부를 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사 사인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1루가 비어있는 상황이고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에서 타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교타자 이치로였다면, 그와의 승부는 적절히 피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일선 감독들이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태생이 그러하니 그렇게 한다 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는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안타 아니라 홈런을 맞아 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시쳇말로 '맞짱' 한번 떠보는, 스포츠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런 그의 두둑한 배짱이 아닐까.
임창용 선수가 던진 회심의 변화구가 조금만 더 날카로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한 것 누구 못지 않지만, 난 그래도 이치로라는 교타자의 명성에 굴하지 않고 과감히 정면승부를 택한(설령 그것이 상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임창용 선수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상식적인 비겁함 대신 비상식적인 '맞짱'을 택한 임창용

언제부턴가 우리에게는 잠시의 굴욕이나 비겁을 지혜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지켜야 할 원칙이 있지만, 우리 사회는 원칙보다는 상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스스로의 영혼을 팔아넘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실과 타협을 시도해 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지혜로왔노라고. 유연함을 가지고 있노라고.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소신보다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할 지 고민하고, 회사에서는 개인의 직무능력보다 정치력이 우선하여 업무성과 높이는 일보다 직장상사와 술 잘 마시고 눈도장 찍는데 여념이 없는 일상을 이 시대 우리는 살고 있지 않는가. 불의를 향해 날카로운 강속구 한 번 던지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면서, 과연 임창용의 실투를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일까.

사회의 불의를 향해 그처럼 강속구 한 번 던져 보았나

그의 변화구는 비록 이치로의 방망이에 의해 초토화 되었지만, 그의 도전정신은 우리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듯 하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불의 앞에 임창용만큼의 배짱도 없다면 우리는 잠잠히 침묵해야 한다.
임창용 선수는 내일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야쿠르트의 수호신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일본 마운드에서도 그날의 두둑한 배짱으로 일본 타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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