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두 가지 색다른 문화

2000년 실시되었던 제16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된 색다른 문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총선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한 낙선운동이고, 또 하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다. 이 둘은 기존 선거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일단 낙선운동은 타의에 의한 피선거권 포기를 강요함으로써 위헌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나름의 판단기준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역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피선거권 포기라는 점에서 국민에게 또 다른 영향력을 가져다 준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을 시작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김한길, 심재덕 의원이 총선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총선불출마만 가지고는 약발이 안 먹힐 것이라 판단했는지, 올해는 총선불출마와 더불어 정계은퇴 또는 탈당을 패키지로 묶어 발표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들 불출마 선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김한길 의원의 선언이 아닌가 싶다.

전혀 감동스럽지 못한 김한길의 불출마 선언

김한길이 누군가. 소설가로 이름을 높였으며, 토크쇼의 진행자로 인기가 있었고, 정계진출 후에는 탁월한 전략으로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전략가이다. 그의 부친 역시 생전 야당 당수를 역임(김한길 의원의 부친 김철은 전 통일사회당 대표를 역임한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이다.)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에서 맞은 두 번의 대선승리의 한 중심에 있었으며,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 선 주역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한길이다.
그런 그가, 작년 2월 돌연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을 이끌고 탈당을 감행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직을 사임한지 얼마 안되어 벌어진 사건이다. 그는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열심히 해도 국민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흩어져있는 지지자의 결집을 위해 지금의 틀을 깨야 한다."고 말해 반 노무현 전선을 분명히 했다. 적어도 내 눈에 그 모습은 명망있는 '정치가'에서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꾼'으로의 변신이었다. 그런 그의 불출마 선언과 정계은퇴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건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던 내 입장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감동을 상쇄시킨 요인은 현 여권의 정치쇄신이 일부의 불출마 선언이나 정계은퇴로 인한 세대교체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대교체만으로는 부족한 여권쇄신

국민이 현 여권에 요구하고 있는 정치쇄신이 단순한 인적쇄신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쇄신요구는 지난 총선에서도 유권자들의 귀를 어지럽힌 대표화두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 요구는 전혀 변함없이 유권자의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얼굴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얻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신을 지지하며 열린우리당까지 창당했던 대표주역들이 4년도 채 되지 않아 약속이나 한 듯이 '노무현 프레임'을 거부하면서 쇄신을 요구하는 모습을 곱게 보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담보할만한 하나의 기댈 언덕에 불과했다면, 이들의 정치적 몰락은 어쩌면 사필귀정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에 놓이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지켜나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형성하여 국민에게 다가갈 것이냐.... 이 둘은 결국 무엇으로 한나라당의 대척점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무엇으로 한나라당의 대척점을 형성할 것인가

현 여권은 지금 그대로라면 어떤 수를 써도 국민의 지지를 전폭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김한길 의원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은 고사하고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 형성을 기대할만한 영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차기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만을 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참여정부는 허약하지 않았다.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득표율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성과 역시 참여정부를 능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왜곡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론의 현 정부 왜곡에 수동적이었던 과거를 반성하고 정치권 이전에 의식있는 시민세력부터 전열을 재정비하자.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 후세에 보여주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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