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미화씨가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여 자신이 방송출연을 저지당하고 있다는이야기를 들었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여부를 알려달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이후, 이것이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놓고 정말 말이 많다.

KBS는 즉각 이에 대해 그런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고 주장하며 김미화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뒤 이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진중권, 유창선씨에 대해서도 고소를 함으로써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분위기이다.

현 정권은 집권하면서부터 줄곧 '좌파척결'을 70년대 '멸공통일'처럼 입에 달고 산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두 지난 과거 10년동안 좌파정권이 집권했기 때문이며, 이 좌파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근본을 잃고 헤메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새 진보와 개혁은 좌파와 동일한 의미가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이나 희망을 찾는 일조차도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고 있다. 그래서 방송인들의 방송출연도 그러한 맥락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 좋다. 그렇게 이념의 잣대를 대고 싶다면, 대보자. 과거 10년의 정권이 좌파인지, 아니면 현 정권이 좌파인지. 난 가끔 좌파척결을 주장하는 현 정권이 우리가 정말 척결해야 할 좌파라는 생각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느끼는데 말이다.

과거 10년정권 VS. 현 정권, 과연 누가 좌파인가

현 정권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자신의 치적을 가시화 하는데 상당히 공을 많이 들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광장 조성이 그 결과물이며,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4대강 사업으로 변형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뒤를 이어 서울시장에 오른 오세훈 시장 역시 광화문 광장 조성 등으로 전임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시프트'라 불리는 장기전세주택은 '오세훈 아파트'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재임 중 직무행위에 대한 결과를 가시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는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결과여야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물질을 제1차적·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유물론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눈에 현 정권이 좌파로 보이는 까닭은 마르크스 주의를 파생시킨 유물론에 너무나 철저하게 근거한 그들의 사고와 행동 때문이다.

이번 'KBS 블랙리스트' 건도 마찬가지이다.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또 지속하여 의구심을 제기할 만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볼 때, 김미화씨가 주장하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문서화 되어 있지 않은 것도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KBS는 성문화된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간단해서 좋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문건이 존재하지 않으니 블랙리스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유물론 아닌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 지식의 박약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설명을 좀 해 보시라.

이런데도 현 정권은 마치 자신들이 진정한 우파인양, 과거 정권을 비롯하여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견해나 사람을 만나면 그들을 좌파로 몰아세우는데 여념이 없다.

철저하게 유물론에 근거한 현 정권의 사고와 행동, 그들은 과연 우파인가

캐캐묵은 이념논쟁 따위는 하지 않겠다. 이념논쟁은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 승부가 이미 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념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고, 또 그 이념논쟁이 국민여론에 영향을 적잖이 미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정치나 국민의 의식수준의 현 주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민족을 위해,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그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나. 현 정권이 아직도 이념의 프레임에 얽매여 있는 이유는 민족과 국민을 위하는 일보다 집권자 개인과 기득권 층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속이 곪아터지든 말든 겉보기에 그럴 듯 해보이는 일에만 여념이 없으면서 똑같은 모양새로 국민을 피폐하게 만드는 북한을 욕할 자격이 그들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을 분별한 옛 조상들의 구분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사기업을 경영하면서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해왔던 한심한 장사치에게 나랏일을 맡긴 우리 국민의 업보라 여기기엔 너무나도 가혹하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유물론에 쩔어있는 현 정권에게.
당신들은 정말 우파인지 아니면, 우파인 척 하는 보다 악랄한 좌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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