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와 관련해서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겠다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오늘 '무상급식 결과에 상관없이 내년 대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한다.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에 어떻게든 힘을 실어보겠다는 안간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내게 오세훈 시장의 오늘 선언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의 엉뚱함으로 느껴진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의 '대선불출마'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혔을 때 그에게 서울시장직은 '대선을 위한 교두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의지를 밝혔을 때도 그 때와 다르지 않았고, 이러한 논란에 대해 오세훈 시장은 "임기를 다 채우는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공식선언을 한 바가 있다. 오늘처럼.

그러니 오늘의 선언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투표결과에 '시장직을 걸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한다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뜬금없이 내년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곧 과거 임기를 다 채우겠다던 지난 선언이 거짓이며, 오세훈 시장 본인 스스로 서울시장을 대선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는데 있어 대선을 언급했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서울시장'이라기 보다는 '차기 대권후보'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 불출마 하겠다는 선언 역시 내년이 되면, 어떻게 바뀌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파의 국민선동은 참으로 지능적이기도 하다.

자신의 거취가 '차기 대권후보'였음을 천명한 오세훈 서울시장

2006년 오세훈 시장이 처음 서울시장에 출마할 당시, 그는 시정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견해 없이 소속정당이 입혀주는 옷을 그저 입고만 있던 마네킹에 불과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당시 여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의 대항마로서, 그는 스스로 만든 공약 하나 없이 모처에서 미리 만들어진 공약과 정책을 앵무새처럼 읊조리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당시 신촌에서 있었던 박근혜 의원 테러사건이 난 다음, 유세장에서 "박근혜 의원님, 고맙습니다."를 외쳤을 정도라면 당시 그의 입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과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오세훈 시장은 오늘처럼 국민을 우롱하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행보가 갖는 목적이 대통령이 되는 것인지,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이며, 대통령에 출마하는게 목적이라면 스스로 허경영과 같은 4차원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사이, 오세훈은 허경영이 부러웠나

그는 그냥 17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아름다운 퇴장'이라 박수 받던 그 때까지가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오세훈 시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안쓰러울만큼 가엾다. 일각에서 '5세훈이'라고 이야기 한다는데, 오늘 발표한 '조삼모사'의 형국을 보니, 다섯살도 그에게는 벅찬 나이임에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오늘의 선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치가'나 '지도자'이기보다는 스스로 '정치꾼'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 그는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의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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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속에 6.2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결과를 놓고 보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참패하였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엄청난 약진을 하면서 2004년 총선이후 최대의 선거결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결과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개표 중반부터 꾸준히 선두를 유지하던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0.7% 포인트의 너무나도 근소한 패배. 오세훈 후보도 시인했듯이 이것은 오세훈 후보가 '사실상 진' 게임이다.
오세훈 후보가 '사실상 졌다'고 시인했으면, 한명숙 후보는 '사실상 이긴' 상황인데 나는 한명숙 후보는 사실상 이겼더라도, 한명숙 후보와 함께한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오세훈 후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진' 것이라 평가하고 싶다. 개표상황 내내 그들이 보여준 실망스러움은 한명숙 후보의 선전을 희석하고 말았다. 무엇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까?

한명숙 후보의 선전을 희석시킨 한명숙 후보캠프

TV와  선관위 홈페이지 그리고 한명숙 후보 홈페이지를 번갈아 살피면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한명숙 후보 홈페이지의 자체 TV생중계에서 밝힌 선관위 공식집계와는 달랐던 그들만의 개표현황이었다.
 
그들만의 집계현황은 개표율은 선관위의 공식집계보다 약 3%정도 앞선 것이었고, 2위와의 표차도 선관위의 공식집계보다 무려 25,000표 가량 더 차이가 나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의 전체 유권자 약 827만명 가운데 투표자 수가 약 440만명이었음을 감안할 때 3%라면 대략 13000표. 그 3%가 모두 한명숙 후보의 표라 해도 이것은 수치가 안 맞는 것이었지만, 방송을 담당하는 VJ들은 개표현장에 파견된 요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서 그 말은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선거캠프에서, 그리고 서울광장에서 두 차례씩이나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면서 '이 추세라면 아침무렵에는 약 15만표 차이로 당선이 확정될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라면,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 선거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겪었을 사람 아니던가. 그가 내 놓은 분석은 그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수치상 앞뒤가 안 맞는 계산에 대해 어느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지지자들은 서울 광장에 모여 15%남짓 개표된 결과만으로 이미 승리를 확신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한명숙 후보는 짐짓 신중하고자 했으나, 캠프에 있던 다른 지지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고, 성급했다.

나는 당시 한명숙 후보 캠프에서 내놓았던 그들만의 개표현황이 억지로 조작된 사실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표 내내 한명숙 후보가 8천표 이상 앞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들만의 개표현황이 상당히 왜곡되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왜곡된 그들만의 개표결과

과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목적과 이념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실패한 정부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차가운 이성을 외면한 채 너무나도 뜨거운 가슴만으로 그들의 목적과 이념을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수구세력의 눈에 과거 냉전시대에 죽창을 들고 덤비던 '좌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억울하되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현재 민주세력의 상대는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다. 잔꾀에 능한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일은 한두번에 끝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 속에 전략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그들이 억지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그래도 이길까 말까한 승부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왜곡된 결과물을 마치 사실인양 공개하는 것은 MB정권의 독재만큼이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개표결과의 왜곡에 대해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이번 선거가 감정적으로 그럴만한 게임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으며, 그런 사소한(?)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아웅다웅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보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자. 그 모습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릇된 행동은 민주세력을 시샘하는 많은 적들에게 또 다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냉정함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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