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8대 총선에 서울 동작 을에서 출마한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가 갑작스런 성희롱 파문에 휘말렸다. 사건은 정 후보가 해당 여기자를 찾아가 공식 사과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가해자의 입장에 선 정 후보나, 피해자의 입장에 선 여기자 모두 잘했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정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과연 뭘까.

가해자, 피해자 모두 정당하지 못해 보이는 이유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몽준 후보의 처신이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3일 오전 성명을 통해 '어깨를 치는 순간 본의 아니게 얼굴에 손이 닿았고, 이로 인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전날 언론의 보도와는 상반된 내용이었다.
피해자의 소속언론사인 MBC는 곧바로 반발했다. MBC는 인터뷰과정에서 있었던 일인만큼 당시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있음을 밝히고, 이 동영상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해 정 후보측을 압박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정몽준 후보는 3일 오후 MBC를 방문하여 피해 여기자에게 사과한 후, "며칠간 잠을 못 자 피곤한 상태에서 왼손으로 여기자의 오른뺨을 건드렸다"고 시인했다.
사실 정몽준 후보는 성희롱을 했다고 치더라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속한 한나라당은 성희롱이 아니라 성추행을 해도 면죄부를 주는 정당이라는 것쯤은 이제 웬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최연희, 박계동의 과거 사례를 보면, 이번 정몽준 후보의 행동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후 정몽준 후보는 거짓말을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는 시도를 보임으로써 여론의 공분을 사고 말았다. 만약에 MBC가 동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정 후보의 대응이 이렇듯 조령모개의 민첩함을 보였을까? 정몽준 후보의 처신이 실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실망시키는 건 그의 성희롱이 아니라, 그의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가 구태를 벗지못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또 그의 소속이 한나라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리 실망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현실이 더 실망스럽다.

실망스러운 정몽준의 거짓말, 정치도 그렇게 하시렵니까

선정적인 문구가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낯이 찌푸려지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몽준 후보는 해당 여기자의 뺨을 쓰다듬으며 툭툭 쳤다고 한다. 당하는 여기자의 입장에선 무척 화가 났을 것이며,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욕감이 성적 수치심이냐 하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물론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자의 심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 그만큼 왜곡되어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남녀평등시대를 맞이하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 관련 범죄의 관념은 지나치게 여성편향적이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분명 정몽준 후보는 해당 여기자에게 실수를 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격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 큰 성인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했다. 이에 대한 모욕을 느끼고 사과를 요구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기자는 즉시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다. 인격모독과 성희롱은 언어의 선정성에서부터 그 내용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를 보인다. 과연 남성이 여성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무조건 성희롱이 되는 걸까?
혹시 그 여기자는 스스로가 언론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본인의 불쾌함을 선정적으로 이슈화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그로 인해 정몽준 후보가 궁지에 몰린다면, 그래서 선거판세에 영향이 미친다면, 그건 더할 나위없는 특종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 을 선거구가 이번 총선 최대의 격전지인 점, 또 그의 상대 후보가 자사 앵커출신인 정동영 후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의문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성희롱, 언론 권력을 이용한 침소봉대는 아니었나

물론, 피해 여기자가 'MBC의 논개'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 당사자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측은하게 생각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한 현실인 것 같다. 이번 사건이 더더욱 기분을 씁쓸하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번 사건을 통해 이 시대의 정치, 사회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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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국가 최고의 권력자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며, 정부의 수장이기도 하고, 국군을 통수할 권한도 지닌다. 그래서 대통령은 다른 어떠한 지위보다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이 다른 지위가 누리는 것 하나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국무위원들도 모두 하고, 군에서는 장성부터 분대장에 이르기까지 꼭 하는 이것을 유독 대통령은 하지 않는것이 조금은 이상하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임식이다.

왜 대통령은 이임식을 안하는 걸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오전, 나는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을 환송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잠시 환송을 위해 나온 노사모를 비롯한 여러 지지자들에게 짧은 인사한마디를 남기고는 곧바로 KTX 탑승을 위해 탑승장으로 향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이들의 모습은 겉보기에 분명 하나였다. 모두 하나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전통의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인 '노사모',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된 '시민광장', 또 다음카페를 중심으로 모인 '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파티를 준비하는 모임', 언뜻 봐도 세 단체가 각기 저마다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제각각이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 구심점을 가지고 세 단체가 함께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세 단체는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그저 각기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통합 속의 분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더욱 나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나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던 그 순간, 저 쪽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한쪽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축하하는 움직임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전 지도자의 귀향을 환송하는 움직임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보니, 봉하마을에는 호화사저는 없고, 통합만 있었다고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은 그 자체가 축제였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과연 우리는 통합하고 있었던 것일까.

통합 속의 분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대통령 취임식을 이임식과 함께 치루었다면, 새로운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전 지도자를 한번쯤은 실제로 목도했을 것이고, 이전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국정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한번쯤은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나와 함께 서울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취임식 중계를 보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취임식에 참여했던 시민들 역시 서울역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보여주었다면 이 얼마나 멋진 한편의 드라마인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대통령이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크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것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봤을 때처럼 온 국민이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정치가 '쇼'라고는 하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정치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임식과 취임식을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

지난 우리의 역사는 단 한번도 통합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선시대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그랬고, 붕당 간의 정쟁이 그랬다. 현대사에 들어오면 그는 더 분명해진다. 일제 치하에서는 친일과 반일의 반목이 있더니,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놓고 이념간의 갈등이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의 대치, 여기에 영호남의 지역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번도 통합을 해본 적이 없는 굉장히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지도자가 되면 통합을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경우는 드물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에 성공하지 못했다. 실제로 통합의 의지가 있다면, 또 그래야 한다면,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취임식만은 그렇지 못했다. 취임식만 있고 이임식은 없는 현 상황에서는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밀려 쫓겨나는 아주 볼썽 사나운 모양새가 반복될 뿐이다.

이제 이를 실천할 몫은 5년뒤 선출될 18대 대통령 당선자의 몫이 되었다. 이전 대통령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 그가 실천에 옮겨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다음 18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임사와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온 국민이 한 자리에서 함께 듣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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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 오면 참여정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2002년 12월, 노란물결의 함성 속에 등장한 참여정부는 길었던 5년의 영욕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정권의 마지막이 이렇게 아쉬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참여정부가 드디어 마무리 된다는,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의지할 곳 하나를 잃은 상실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실, 대통령이 바뀌는 것은 늘 나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다는 안도감이 있었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 실현의 환희가 있었다면, 참여정부의 등장은 정치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항상 희망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그러했다. 소속정당에서조차 온전한 지지를 얻지 못했던 최초의 후보였으며, 오로지 국민의 지지만을 발판삼아 대통령이 되었던 그는,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나 지극히 서민적인 모습으로 국정을 운영해가기 시작했다. '과연 저래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국민이 서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을 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거기에 부응했기 때문에 당선된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관념적인 국민의 기대에 실제로 응답한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국민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그의 서민적 행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이같은 배신에 대통령 또한 적잖이 당황스러웠으리라. 서민적인 대통령을 원한다고 해놓고 '대통령이 대통령 다워야지'라고 말하는 국민의 이중성에 그는 혹시 분노하지는 않았을까.
조,중,동은 일제히 '이제 우리는 망했다'를 외치고 있었고, 야당은 취임 보름째부터는 아예 대놓고 탄핵을 말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것을 1년 뒤에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그 때 촛불을 들고 탄핵반대를 외치는 국민들을 보면서 난 우리 국민들이 처절히 반성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 희망사항으로 그치고 말았다.
잠시 반성하는 듯 하던 국민들은 다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스로가 왜 그러는건지, 타당한 이유도 모른채 유행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해대기 시작했다. 그저 주변사람들에게 욕먹는 내가 싫어서, 사람들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치며, 스스로의 소신을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마당에 이르러, 국민들은 자신들의 변심이 진심은 아니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비겁한 국민들, 어떻게 욕을 퍼부어야 이 응어리를 풀 수 있을런지. 나는 이들에게서 박쥐와 같은 국민성을 발견했다. 이들과 같은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또 한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궁지에 몰려 억울한 5년을 보내는 동안 내가 그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죄책감으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습관처럼 유행처럼 떠들어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역사상 진짜 서민적이었던 대통령, 가장 민주적이었던 대통령, 가장 소신이 뚜렷했던 대통령, 원칙에 충실했던 대통령,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 전체를 우선 생각했던 대통령, 거버넌스(Governance)에 충실했던 대통령, 외세에 당당했던 대통령, 민족을 사랑했던 대통령...

지금 열거한 내용 가운데 단 하나라도 완전히 갖춘 대통령을 앞으로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향후 100년 이내에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대통령을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한꺼번에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던 대통령, 노무현은 그렇게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지난 5년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5년동안 대통령께서 다스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려운 국정운영의 기간동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께 아무것도 도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은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나라를 위한 원칙과 소신을 실현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일에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참여정부는 끝나지만, 그래서 대통령의 호칭에 '前'자가 붙게 되겠지만...
저의 마음 속의 대통령은 영원히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 주십시오.

나중에 봉하마을에 꼭 가서 찾아뵙겠습니다.
저를 취임식에 불러주셨던 그 때 그 마음 그대로, 다시 한번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십시오.
대통령과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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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고, 인수위의 월권에 대해서도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정권 말기의 대통령은 늘 외로운 존재였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같은 움직임은 마치 우리나라에 없는 국제선 열차를 외국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생소하고 어색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권력을 다 쥔 것처럼 전횡을 일삼으며, 참여정부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면서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만큼은 5년을 더 가져가고자 하는 이명박 당선자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비겁함에 비하면, 그의 소신은 분명 칭송받아 마땅한 구석이 있다.

칭송받아 마땅한 노무현의 소신

노 대통령의 말대로, 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안을 참여정부에서 통과시켜내고자 하는 것은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실패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자신들의 업적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테지만,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쳐버리고자 하는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새로 출범하고자 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협박을 해댈 터이고, 이로 인해 악화된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대통령이 그들의 뜻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식으로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통령 당선 직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의 행보를 지켜보면 그 섬김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려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는 5년동안 국민들이 편한 삶을 살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난 묻고 싶다.
경제파탄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드 빚이 늘어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것이 어떻게 정부만의 책임인가. 신용정보 없이 무분별하게 카드발급을 해 준 카드사, 그리고 발급받은 카드로 규모없는 씀씀이를 보였던 일반인들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인가 말이다. 삶이 어려우니, 카드빚이라도 얻어서 살아보려 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의 씀씀이를 줄여보기 위한 노력은 왜 해보지 않았는지 따져묻고 싶다. 정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카드빚도 그림의 떡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종부세 폭탄으로 신음했다고 한다. 종부세가 급격히 오른 것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종부세를 낼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야 말로 어느 광고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1% 아니던가?

또, 청년실업이 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말 양심적으로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청년실업이 구조적 실업인가를 말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대기업만을 선호하고, 공무원 되겠다고 돈벌이 안하고 너도나도 학원으로, 고시촌으로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청년 실업자의 실업문제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처한 자발적 실업이 대부분이다. 남이 한다니까, 해서 좋다니까 아무 생각없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것이다. 절대빈곤자들에게 복지혜택 더 주는 것에 대해서는 '좌파'니 '빨갱이'니 운운하면서, 자발적 실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무능하다고 이야기 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아무런 기준없이 제 멋대로 산다. 그리고는 국가에서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며 원망과 저주를 일삼는다.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나 비겁해졌다. 도무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르니 말이다.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 모르는 비겁한 국민

얼마 전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벌어진 TV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TF팀장은 '국민이 선택한 한나라당의 정책에 대해 만약 그것이 실패했을때는 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우선은 인정해 주고 믿어달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 정당의 핵심인물의 발언치고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되기도 했지만, 내가 설령 정부조직개편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박 의원의 소신과 열정만큼은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 체면이 있는데, 정책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적어도 박재완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껏 뽑아줬더니, 노무현 만도 못하더라.' 이런 소리 들으면 한나라당 출신으로서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비겁한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설령 업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괴로웠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명감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이명박, 적어도 박재완만큼만 해라

난 이명박 당선자가 지금과 같은 비겁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권에서 수립한 정책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나, 영어몰입교육과 같은 교육정책 등 여론의 지탄을 받는 정책에 대해서, 비록 돌을 맞고 피를 흘릴지언정, 자신의 소신과 철학은 뚜렷이 밝히고 실수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하고 개선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수위의 활동이 이제 한달여 흘렀다.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큰 것이 지금 현재의 여론이다. 하루하루 무슨 얘기가 나올지 불안해 죽겠다는 푸념부터, 집권 시작 전부터 이렇게 휘두르는 정부는 처음 보았다는 분노까지 우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듬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대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르고 한 행동 속에 그들의 진정한 기본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한달여의 인수위 활동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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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레임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워낙 국민으로부터 얻는 지지가 박약한 때문에 레임덕이고 뭐고 따질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의 경우 지금보다 더 박약한 국민 지지와 아들의 권력남용 등으로 인해 혹독한 레임덕을 겪었던 것에 비하면 참여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크게 임기말 국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대화록 유출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가져다주는 충격이 상당하다. 또한 이것이 참여정부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다른 시기의 같은 사안보다 그 의도가 더욱 더 불량하다 할 수 있다. 거기에 기밀유출의 중심에 국가안보의 막중한 책임을 지닌 국정원장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시기상 더욱 죄질이 불량한 기밀유출사건

모든 언론은 일제히 오늘 사퇴의사를 밝힌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과거행적을 들어 '결국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의 과거행적을 떠나 그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대화록을 유출하여 새 정부에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였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가안보를 담보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려했다는 점에서 국가에 두고두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 되며, 그의 퇴진과 사법처리는 당연한 수순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은, 과연 이번 사건의 책임이 김만복 전 국정원장에게만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대화록 유출사건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화록을 노출시킨 중앙일보 역시 김만복 전 국정원장만큼이나 그 책임이 크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이 국가의 안보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임을 감안하면 이를 발표한 중앙일보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중앙일보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당사자인 중앙일보 역시 반성은 커녕 이번 사건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다른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김만복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성토로 일관하고 있다. 왜 중앙일보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가. 여기서도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떠들어 댈텐가. 또 동종업계 종사자에게 배려하듯 모든 언론들이 이에 대해 일제히 함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반성도 비판도 없는 중앙일보

헌법 제37조 2항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제한규정에는 국가안전보장, 사회질서유지, 공공복리에 관하여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하도록 되어 있다. 중앙일보가 유출된 대화록이 (설령 그 문서에 비문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가안전보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밀사항임을 모르지 않았을리 없다. 그들은 특종에 눈이 멀어 국가안보를 담보로 했던 것이다. 그들이 단골메뉴로 떠들어대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정작 그들에게는 울리는 종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가의 안위와 상관없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중앙일보는 반드시 응분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담당기자, 편집국장은 물론이려니와 홍석현 회장까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삼성의 비리조사나, 이명박의 BBK관련 진상조사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사법당국의 분발이 엄숙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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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자'와 '당선인'이라는 호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SBS 8시 뉴스에서 '당선인'의 호칭을 '당선자'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같은 시각 방송된 KBS2TV 뉴스에서 '당선인' 호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변화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명박에 대한 호칭 바꾼 SBS

헌법재판소의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선인'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이들의 요청에 암묵적으로 동의라도 하듯 그들이 원하는 호칭을 사용하던 방송사 가운데서 유독 SBS만이 독자적으로 이명박에 대한 호칭을 '당선자'로 바꾼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호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애자'를 '장애인' 또는 '장애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위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호칭에 앞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 이것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대통령에 대한 위상과 신뢰가 확보되면 당선자라고 부른다 해도 그것이 갖는 의미와 위상은 저절로 높아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호칭 아닌 신뢰확보

MBC의 반응이 나오려면 40여분 기다려야 하지만, 현재로 봐서는 당선인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호칭을 무시했던 인수위와 언론의 오만함에 대해 SBS의 변화는 그야말로 단비와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SBS의 용기가 모든 언론으로 확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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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명박 당선자의 대선공약을 연이어 수정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을 시작으로, 당장 폐지할 것 같던 수능등급제도 2년은 더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데 이어, 오늘은 통신요금 20%인하공약이 사실상 무산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실질성장률 7% 달성 공약을 잠재성장률로 후퇴하는 등 연이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은 시행에 들어가기 전 검토단계에서부터 발을 하나, 둘씩 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작 전부터 뒷걸음을 시작한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의 주요핵심은 '경제회생'이었다. 국민들은 그의 공약을 그의 도덕성보다 우선하여 지지했다. 또한 인수위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는 그가 발표한 모든 공약에 대한 지지'라고 말하며, 공약실천에 대한 강한 자신감마저 보였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명박의 공약과 행보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존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프랜들리 비즈니스'라는 국적불명의 콩글리쉬를 구사하며 목청껏 기업에게 유리한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통신요금 인하와 같은 민생 현안문제의 해결은 비즈니스에 절대 프랜들리하지 못하다는 점은 그 단적인 예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건설도 국민의 여론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가, 착공 후 설득을 병행하겠다고 하는 등 공약실천단계에 굉장한 혼선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는 낙동강 유역의 개발수준에서 그치게 될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러나 속았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공약실천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약의 타당성 검증이 공약수립 당시에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성 검증 미흡한 공약... 혹시 포퓰리즘?

한나라당은 지난 5년 간 꾸준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포퓰리즘에 의한 정권'이라 비난해왔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의 머리 속에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부정 인식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이 포퓰리즘으로 엄청난 지지율 확보에 성공했다. 보수언론의 후원을 얻은 경제파탄론으로부터 5.31 지방선거에서의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이 추구한 포퓰리즘의 승리였다. 참여정부의 포퓰리즘이 실천력 부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면, 한나라당의 포퓰리즘은 그들이 끊임없이 비난하는 참여정부의 포퓰리즘보다도 더욱 심각한 현실감각과 정치철학의 부재를 노출하고 있다. 국민이 '포퓰리즘'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연상하는 틈을 이용하여 한나라당과 이명박 당선자는 포퓰리즘의 속성을 매우 지능적으로 이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정책에 무임승차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 언론은 5년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우호적이다. 실현여부에 관계없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식의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조용하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무임승차하려는 인수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너무나 관대하다.
취임 전부터 이렇게 얼굴을 바꿔대는 정권을 믿고 5년을 살아야 한다면, 정말 암담하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각종 위장에 능숙했던 과거전력을 감안하면 이같은 변신이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나쁜 버릇은 빨리 고치는 편이 모두를 위해 낫지 않을까. 비겁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듯 싶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을 통해 최초로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전 정부와의 연계를 부정하고 말 그대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면, 당당하게 참여정부와의 대척점을 형성하는 정책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정면승부할 것을 제언한다. 정권찬탈과 독재에 익숙한 이들에게 무리한 부탁일 수는 있다. 그러나, 5년간 한결같이 부정하고 비난하고 파괴하려던 정부의 정책을 일부라도 인정하는 모습은 아무리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고는 하나 한나라당에 최초로 정당성 있는 정권을 허락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지 않나. 현실가능한 정책으로 당당하게 참여정부에 맞서보라. 판단은 국민이 한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무능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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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의 두 가지 색다른 문화

2000년 실시되었던 제16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된 색다른 문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총선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한 낙선운동이고, 또 하나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다. 이 둘은 기존 선거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일단 낙선운동은 타의에 의한 피선거권 포기를 강요함으로써 위헌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나름의 판단기준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역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피선거권 포기라는 점에서 국민에게 또 다른 영향력을 가져다 준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을 시작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김한길, 심재덕 의원이 총선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총선불출마만 가지고는 약발이 안 먹힐 것이라 판단했는지, 올해는 총선불출마와 더불어 정계은퇴 또는 탈당을 패키지로 묶어 발표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들 불출마 선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김한길 의원의 선언이 아닌가 싶다.

전혀 감동스럽지 못한 김한길의 불출마 선언

김한길이 누군가. 소설가로 이름을 높였으며, 토크쇼의 진행자로 인기가 있었고, 정계진출 후에는 탁월한 전략으로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전략가이다. 그의 부친 역시 생전 야당 당수를 역임(김한길 의원의 부친 김철은 전 통일사회당 대표를 역임한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이다.)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에서 맞은 두 번의 대선승리의 한 중심에 있었으며, 참여정부 출범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 선 주역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김한길이다.
그런 그가, 작년 2월 돌연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을 이끌고 탈당을 감행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직을 사임한지 얼마 안되어 벌어진 사건이다. 그는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열심히 해도 국민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흩어져있는 지지자의 결집을 위해 지금의 틀을 깨야 한다."고 말해 반 노무현 전선을 분명히 했다. 적어도 내 눈에 그 모습은 명망있는 '정치가'에서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꾼'으로의 변신이었다. 그런 그의 불출마 선언과 정계은퇴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건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던 내 입장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감동을 상쇄시킨 요인은 현 여권의 정치쇄신이 일부의 불출마 선언이나 정계은퇴로 인한 세대교체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대교체만으로는 부족한 여권쇄신

국민이 현 여권에 요구하고 있는 정치쇄신이 단순한 인적쇄신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쇄신요구는 지난 총선에서도 유권자들의 귀를 어지럽힌 대표화두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 요구는 전혀 변함없이 유권자의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얼굴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얻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신을 지지하며 열린우리당까지 창당했던 대표주역들이 4년도 채 되지 않아 약속이나 한 듯이 '노무현 프레임'을 거부하면서 쇄신을 요구하는 모습을 곱게 보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담보할만한 하나의 기댈 언덕에 불과했다면, 이들의 정치적 몰락은 어쩌면 사필귀정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에 놓이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지켜나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형성하여 국민에게 다가갈 것이냐.... 이 둘은 결국 무엇으로 한나라당의 대척점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무엇으로 한나라당의 대척점을 형성할 것인가

현 여권은 지금 그대로라면 어떤 수를 써도 국민의 지지를 전폭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김한길 의원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은 고사하고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 형성을 기대할만한 영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차기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만을 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참여정부는 허약하지 않았다.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득표율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의 성과 역시 참여정부를 능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왜곡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론의 현 정부 왜곡에 수동적이었던 과거를 반성하고 정치권 이전에 의식있는 시민세력부터 전열을 재정비하자.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 후세에 보여주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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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야당 집권과 오늘의 야당 집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염원하던 1997년 겨울, IMF 경제위기 속에서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을 때, 당시 신한국당(현 한나라당)이 정권교체를 견제하며 내세운 것은 '야당은 집권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권능력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권능력이 없는 야당에 정권을 넘겨주면 사회불안이 야기될 것이라고 갖은 협박을 했었더랬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정권이 바뀌었다. 10년전과 같이 야당이 집권하였고, 또 곧바로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 때와 다른 점은 이제 여.야 모두 집권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수권능력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보면, '과연 한나라당이 수권능력을 가진 정당인가'라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현재 야당인 한나라당은 10년전 야당입장에서 정권을 잡았던 새정치국민회의와 달리, 집권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된 직후 한나라당의 움직임을 보면, 당.정.청 통합, 국보위출신 인사 인수위원장 임명 등 과거 회귀의 성격이 매우 짙은 것을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은 아직 5,6공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주듯, 인수위 인사들 가운데에는 5,6공화국 정부각료출신들이 더러 눈에 띈다.

견문발검(見蚊發劍)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물론, 과거의 집권경험을 바탕으로 하려니 과거의 인사들이 필요했을 수 있다. 또, 10년만에 다시 잡은 칼자루이니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나. 하지만, 칼을 제대로 쓰려면, 악력이나 팔힘도 키워야 하는 법인데, 지금의 한나라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칼을 쥐고 휘두르는 모양새가 자칫 사람 여럿 잡을 모양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 각 부처를 돌아다니며,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다닌다고 한다. 인수위 활동을 하는 건지, 국정감사를 하는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향후 국정활동의 방향을 잡기 위해 지난 5년간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듣는 자리에서 호통이 웬말인가. 진지하고 신중해야 하는 위치에서 견문발검(見蚊發劍)하는 인수위의 주제넘은 행동은 정권교체로 인한 그들의 흥분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이젠 좀 진정하자. 체신머리 없다.

수권능력(受權能力) 찾아 임기5년(?)

또한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실행방안을 내놓으라고 한단다. 왜 이명박 정권의 정책 실행방안을 참여정부 공무원들에게 요구하나. 물론 그들은 다음 정부에도 함께하겠지만, 이건 조폭집단도 아니고, 꼭 '너 누구랑 더 오래 있을 것 같아?'라고 협박하던 군대고참들을 보는 것만 같다. 그들 말마따나 지난 '잃어버린 10년'동안 그들은 정권을 되찾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런 기초적인 고민도 없이 정권을 되찾는데만 급급했다면, 한나라당이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들에게 수권능력(受權能力)이 있다고 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심한 경우 잃어버린 수권능력(受權能力) 확보하다가 임기 5년을 채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대교협과의 오찬장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 30년동안 교육부가 입시를 주관해왔지만, 제대로 못했다. 이 정도면 정부가 입시에서 손을 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입시관리 할 자신이 없다고 하는게 솔직하지 않을지. 행정과 경영은 엄연히 다르다는 현실 앞에 겸허히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낫겠다.

악몽같은 한나라당의 과거 회귀본능

그렇다고 한나라당 내부가 조용한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공천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대권과 당권을 모두 쥐려는 이명박 당선자와 당권만은 사수하려는 박근혜 전 대표 간의 파워게임은 이제 3라운드에 접어든 느낌이다. 정당은 정당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두 거물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다.
4년 전 천막당사의 정신은 기대하지도 않겠다. 국가파탄까지 이르지만 않았으면 하는 한숨섞인 걱정만이 앞선다.
1997년 이들의 이전 집권은 IMF 경제부도로 막을 내렸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집권의 기억만을 되살려 그 시절로 되돌아 가려고 하고 있다. 시간은 10년이 흘렀다. 강산이 바뀌었다. 바뀐 세월을 뛰어넘을 수권능력(受權能力)을 과연 한나라당은 가지고 있을까? 의문이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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