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미화씨가 이른바 'KBS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여 자신이 방송출연을 저지당하고 있다는이야기를 들었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여부를 알려달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이후, 이것이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놓고 정말 말이 많다.

KBS는 즉각 이에 대해 그런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고 주장하며 김미화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뒤 이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진중권, 유창선씨에 대해서도 고소를 함으로써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분위기이다.

현 정권은 집권하면서부터 줄곧 '좌파척결'을 70년대 '멸공통일'처럼 입에 달고 산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두 지난 과거 10년동안 좌파정권이 집권했기 때문이며, 이 좌파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근본을 잃고 헤메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새 진보와 개혁은 좌파와 동일한 의미가 되었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이나 희망을 찾는 일조차도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고 있다. 그래서 방송인들의 방송출연도 그러한 맥락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 좋다. 그렇게 이념의 잣대를 대고 싶다면, 대보자. 과거 10년의 정권이 좌파인지, 아니면 현 정권이 좌파인지. 난 가끔 좌파척결을 주장하는 현 정권이 우리가 정말 척결해야 할 좌파라는 생각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느끼는데 말이다.

과거 10년정권 VS. 현 정권, 과연 누가 좌파인가

현 정권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자신의 치적을 가시화 하는데 상당히 공을 많이 들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광장 조성이 그 결과물이며,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4대강 사업으로 변형되어 또 다른 결과를 낳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뒤를 이어 서울시장에 오른 오세훈 시장 역시 광화문 광장 조성 등으로 전임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시프트'라 불리는 장기전세주택은 '오세훈 아파트'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재임 중 직무행위에 대한 결과를 가시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는 인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결과여야 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물질을 제1차적·근본적인 실재로 생각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유물론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눈에 현 정권이 좌파로 보이는 까닭은 마르크스 주의를 파생시킨 유물론에 너무나 철저하게 근거한 그들의 사고와 행동 때문이다.

이번 'KBS 블랙리스트' 건도 마찬가지이다.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고, 또 지속하여 의구심을 제기할 만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볼 때, 김미화씨가 주장하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문서화 되어 있지 않은 것도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KBS는 성문화된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간단해서 좋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문건이 존재하지 않으니 블랙리스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유물론 아닌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 지식의 박약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아니라면 설명을 좀 해 보시라.

이런데도 현 정권은 마치 자신들이 진정한 우파인양, 과거 정권을 비롯하여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견해나 사람을 만나면 그들을 좌파로 몰아세우는데 여념이 없다.

철저하게 유물론에 근거한 현 정권의 사고와 행동, 그들은 과연 우파인가

캐캐묵은 이념논쟁 따위는 하지 않겠다. 이념논쟁은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 승부가 이미 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념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고, 또 그 이념논쟁이 국민여론에 영향을 적잖이 미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정치나 국민의 의식수준의 현 주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민족을 위해,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그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나. 현 정권이 아직도 이념의 프레임에 얽매여 있는 이유는 민족과 국민을 위하는 일보다 집권자 개인과 기득권 층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속이 곪아터지든 말든 겉보기에 그럴 듯 해보이는 일에만 여념이 없으면서 똑같은 모양새로 국민을 피폐하게 만드는 북한을 욕할 자격이 그들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을 분별한 옛 조상들의 구분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사기업을 경영하면서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해왔던 한심한 장사치에게 나랏일을 맡긴 우리 국민의 업보라 여기기엔 너무나도 가혹하고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유물론에 쩔어있는 현 정권에게.
당신들은 정말 우파인지 아니면, 우파인 척 하는 보다 악랄한 좌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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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새벽, 차 안에서 굉장히 낯선 구조물을 하나 보았다. 광화문 광장 맨 끝자락에 놓은 20~30M는 족히 됨직한 저 큰 구조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세종로로 들어서니 옆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스노보드대회를 한단다. 서울 중심 한 복판에서. 발상 자체가 기발함을 넘어서 뭔가 모를 황당함을 가져다 준다.

낯설어라, 서울 한 복판의 스노보드대회

내 눈에 낯설다는 느낌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스노보드대회를 위해 설치해놓은 구조물을 보면서 난데없이 그 앞에 앉아계신 세종대왕이 왜 그리도 측은하고 안 쓰럽게 느껴지던지. 국제대회니까 외국 출전자도 많을텐데, 전 세계가 칭송하는 국가 지도자의 동상 뒤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재주를 넘으며, 심지어는 발길질까지 해대는 모양을 연출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인 듯 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황당해라, 세종대왕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발차기와 재주넘기

뚝딱뚝딱 우리나라는 설치구조물 만들어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행사를 위한 무대셋트 설치부터 공사현장 지지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뚝딱뚝딱 짓고 만드는데는 하여간 검증된 실력을 뽐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높은 구조물을 만들었다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 한 복판인가, 그것도 도심 한 가운데 세종로 광화문 광장이다. 많은 차량과 유동인구로 늘 붐비는 곳.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연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 이 곳을 찾는다. 스노보드대회가 열리면, 관중들도 많이 올텐데.... 그럼 애먼 서울시민만 교통지옥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왜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 스포츠도 아닌, 고급 레저스포츠 행사 때문에 교통지옥이라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걸까.

영화 '국가대표'가 꽤 인기 있었다고 한다. 스키점프라는 비 인기종목 선수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에 편승해서 도시를 알리고자 유사한 스노보드대회 행사를 기획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럼 그토록 스키점프 선수들이 간절히 원하던 스키점프시설도 저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스키점프시설은 무주리조트에 단 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생긴지 10년쯤 된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스키점프시설을 요청해도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 안해주던 정부(그것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에서, 그 오만가지 핑계를 뒤로하고 그 웅장한 시설을 도심 한 복판에 내놓는 건, 비 인기종목의 설움 속에 묵묵히 자신의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일은 아닐까. 무한도전이 봅슬레이 국가대표 되었더라면, 북한산에 봅슬레이 경기장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이다.

장하도다, 무한도전이 북한산을 살렸구나

세종대왕 뒤통수에 하이킥 날릴 생각 하기 전에, 생각 좀 하자. 그 스노보드대회가 천만 시민에게 불편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거행해야할만큼 국익이나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만약 객관적으로 그러하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88올림픽때 소매치기도 영업(?)을 중단했다던 한민족이다. 그리고, 비싼 예산 들여 조성한 광장이면, 모두를 위해 유익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집회나 시위는 컨테이너 쌓아가며 막아대면서,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스키점프대회장으로 공공시설을 줏대없이 굴려대면서 무슨 놈의 민주주의 타령이냐, 나라팔아 돈 버는 장삿꾼이지. 이 행사 기획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다면... 오세훈, 당신도 정말 명박스럽기 그지 없다. 가뜩이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거가 마냥 불편한 광화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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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 번 가는 인생이기에,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도 빨리 다가 온 오늘의 사건은 그 당혹함을 헤아릴 틈 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음 이전에 그가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욱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지역주의 청산, 시민주권사회를 완성하는 것은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부터 이에 대한 실천 방안을 차분히 고민해야겠습니다.

한편으로, 늘 '좌파', '빨갱이'라는 매도를 통해 참여정부의 잔재를 소멸하고자 애써 온 현 정부의 시름이 조금은 덜어졌을리라는 생각에 위로를 삼아야 할까요.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말부터 먼저 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일단 오늘은 한 마디만 하고 숙연하렵니다.

이명박 대통령께 묻습니다.
언론의 보도대로 정말 그렇게 비통하고 애석하십니까.
혹시 앓던 이 빠진 기분은 아니십니까. 제가 보기엔 그래 보입니다만.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이 자유당 시절로 회귀하였으니, 그 시절을 빗대어 한 말씀 올리지요.

"각하, 정말 시원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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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권 지폐의 발행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두고 우리나라에서 아직 10만원권 발행은 시기상조이며, 5만원권 발행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나, 고액권을 발행하느니 차라리 화폐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10만원권 발행이 취소된 것은 그 모델이 현 정부가 빨갱이로 매도하는 백범 김구 선생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와 뉴라이트가 백범 선생을 10만원권 모델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이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면, 특히 그 일이 정부의 결정이라면, 그 결정에 대한 기대와 효과를 가늠하기 이전에, 그 결정이 어떤 이념을 근거한 것인가부터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한갖 지폐모델까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현 정권과 보수층이 지닌 가치관의 후진성이 무척이나 안쓰럽다. '김구포비아'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과도한 현 정부의 김구에 대한 혐오는 흡사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를 보는 것만큼이나 갑갑하기 그지 없다.

이명박, 이념의 척화비를 세우다.

오늘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이 맘 때쯤 이명박 당시 후보는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말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큼은 확실하게 죽여놓은 것 같다. 하지만, 현 정부가 죽여놓은 것이 어디 경제뿐이겠나. 그와 다른 이념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 역시 모두 다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일단 현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온전히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으로 인한 파장을 염려하기 이전에 자신의 사법처리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18세기 로베스피에르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환생한 듯 여전히 살아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18세기에 급진진보세력이었던 그가 21세기에는 강경보수세력으로 이념의 변화를 보이는 것 뿐이다.

로베스피에르가 환생한 21세기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2008년은 '이념'이라는 단어없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로부터 시작된 이념논쟁은 교육감 선거를 거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문제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것만 따져봐도 정말 그 파장이 엄청나다. 90년대에 이미 종말을 고한 이념논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왜 우리는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나 하는 괴로움도 그 부끄러움과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노래방에서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아는지. 세기를 넘나드는 현 정권의 회귀본능은 1년내내 우리의 말문을 막아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보다 더 심각한 건 그런 그와 함께 앞으로 4년을 더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의 업적이라면, 이렇듯 이념의 척화비 건립과 로베스피에르의 환생으로 대표되지 않을까. 이념의 척화비를 세운 한국의 로베스피에르. 4년 후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가 이와 같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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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일이다.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에 이명박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그가 서울시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이유는 '기업경영'과 '행정'엄연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기업경영을 잘했다고 해서 올바른 행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마치 초등학생이 구구단 좀 잘 한다고 시도 잘 쓰고  운동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같은 반응에 주위 사람들은 '그는 훌륭한 기업인이며, 동시에 성공한 정치인'이라며 결국 행정의 최고책임자도 정치인이 되는 마당에 정치에서 성공했으면 행정도 잘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제 와서 그들에게 묻는다. 경영을 잘했고, 정치도 성공했다는 그가, 지금 행정을 잘하고 있는지.

정치와 행정은 뭐가 다를까

어떠한 형태, 어떠한 성격의 조직이든 간에 그 조직 내부에 '정치'와 '행정'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치와 행정을 올바르게 구분해내는 사람들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정치-행정 이원론을 주장한 윌슨의 주장이 정치학에서 행정학을 분리한 최초의 시도라고 한다면, 정치와 행정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회 중심의 행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정치와 행정이 완전히 분리된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렇다보니, 정치와 행정에 대한 경계 자체도 모호해지고, 정치인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는 모종의 아이러니(?)도 발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직 내에서의 정치와 행정은 어떠한 함수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 그 의미가 명백하게 정리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나, 실무 차원의 논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선 정치는 행정에 비해 더 '인정적'이다. 오늘날 행정의 커다란 병폐요인 중 하나가 '온정주의 문화'인데, 이 역시 행정가들의 정치적 행동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일의 과정이나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을 꽤 중시한다. 지나치게 되면 편가르기가 된다. 소위 보스기질을 가진 이들이 대체로 정치를 잘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일만큼 인간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 사람 챙기기'만 잘 해도 정치는 거의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두환이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이들의 정치력은 조직의 성과와 무관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 사람 챙기는 일에 급급하게 되면, 업무의 절차나 과정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단편적이고 근시안적 시각을 강요하게 되고, 이에 따라 조직의 목표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구성원에 대한 평가 역시 조직 내의 업무성과와는 별개로 조직 수장과의 인간 관계에 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구성원의 조직 장악은 조직 목표 수립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행정은 정치가 지닌 이러한 병폐에 확실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다. 우선 행정은 조직성과중심의 관리를 인맥보다 우선시한다. 행정담당자의 리더십 역시 관리차원의 성격을 벗어나지 않는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차별'이 아닌 '구별'로 인식하며, 여기에 '성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프로스포츠에서 선수의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상품성을 지닌 선수라도 본 경기에 투입하지 않는 것처럼, 행정차원에서의 조직운영은 어찌보면 '비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성과의 향상이다. 구성원을 조직의 한 부속처럼 여기는 인간소외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행정도 인간의 행동인 바, 정치적 요소가 완전 배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올바른 행정은 인정에 얽매여 조직전체에 해를 끼치는 일은 범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나는 한 조직 내에 반드시 정치와 행정은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대부분의 인간은 행정보다 정치를 더욱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행정에 비해 더 인정적인 정치가 사람들의 선호를 받는 것은 어찌보면 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호적인 정치에 치중하여 행정을 등한시하게 되면 조직 내의 정치와 행정의 균형은 깨어지고, 조직은 그 목표달성을 위한 험난한 장애를 조직내부에서부터 맞닥뜨려야 한다.
 
조직을 위한 바람직한 조직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정치, 행정에 대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것은 조직의 수장이나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치(행정)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면, 스스로 그 성향에 맞춘 행정(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유연함이다.
 
더욱이 정치가 인간에게 더욱 친숙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정적 성향을 버리지 않는 희생은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한 커다란 동인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와 행정, 그 공존의 딜레마

정치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헤어나오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또 인간에게 호의적인 관계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반면에 행정은 보약과 같은 것이어서 한번 맛을 들이기는 쉽지 않고, 비 인간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내부 구성원에게조차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행정은 그 구현에 시스템적 사고를 요구하는 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근본 목적에 충실한 관계로 중심이 흐트러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또한 시스템적 사고를 통한 조직운영의 테크닉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묻는다. 정치를 알고 행정을 아는 상황이라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직 내에서 정치지향적 인물이 될 것인가, 행정지향적인 인물이 될 것인가. 어느것이 더 가치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선택은 당사자 스스로가 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정치 또는 행정 둘 중 하나만 알고 정치나 행정을 하는 사람이나, 행정을 모르고 정치를 하는 사람 가운데(정치를 모르고 정치를 할 수는 있다. 쉬운 일이니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는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설령, 만족스런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모두에게 '보약'같은 존재가 되는 경우 역시 보지 못한 것 같다.

마약같은 정치(政治)와 보약같은 행정(行政)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자신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원로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경영과 행정은 알았는데 정치는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성공한 기업인이라 하니, 경영을 안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그가 행정을 알았을까 하는데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수가 없다. "내가 경영과 행정은 해봤는데, 정치는 안해봤다" 이랬다면 또 모르겠다. 그렇다쳐도 국회의원 지내놓고 정치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된다. 어차피 인간은 정치적 동물 아니던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그는 경영과 정치는 아는데, 행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정치와 행정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논어의 이인편에 '아는 것을 아는 것,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스스로의 현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몰라도 할 수 있는 마약같은 정치를 해보고 난 후, 서울시장 한번 거치고 나서 행정을 안다고 하는 오만함. 오늘 현재 이명박 대통령을 힘들게 만든 주범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맨 처음 현대건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초심을 청와대에까지 가져다 놓았다면,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무슨 일을 하면 욕을 먹던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한 멸시를 받는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측은함과 함께 한숨으로 엉켜 나오는 요즘이다.

국민은 보약같은 대통령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이명박 대통령의 조속한 해독을 기원하는 바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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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국가 최고의 권력자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며, 정부의 수장이기도 하고, 국군을 통수할 권한도 지닌다. 그래서 대통령은 다른 어떠한 지위보다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이 다른 지위가 누리는 것 하나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국무위원들도 모두 하고, 군에서는 장성부터 분대장에 이르기까지 꼭 하는 이것을 유독 대통령은 하지 않는것이 조금은 이상하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임식이다.

왜 대통령은 이임식을 안하는 걸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던 지난 25일 오전, 나는 전임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을 환송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잠시 환송을 위해 나온 노사모를 비롯한 여러 지지자들에게 짧은 인사한마디를 남기고는 곧바로 KTX 탑승을 위해 탑승장으로 향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이들의 모습은 겉보기에 분명 하나였다. 모두 하나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전통의 노무현 대통령 지지세력인 '노사모',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된 '시민광장', 또 다음카페를 중심으로 모인 '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파티를 준비하는 모임', 언뜻 봐도 세 단체가 각기 저마다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제각각이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한 구심점을 가지고 세 단체가 함께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세 단체는 하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그저 각기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통합 속의 분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더욱 나를 안타깝게 했던 것은, 나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던 그 순간, 저 쪽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한쪽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를 축하하는 움직임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전 지도자의 귀향을 환송하는 움직임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보니, 봉하마을에는 호화사저는 없고, 통합만 있었다고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은 그 자체가 축제였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과연 우리는 통합하고 있었던 것일까.

통합 속의 분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대통령 취임식을 이임식과 함께 치루었다면, 새로운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전 지도자를 한번쯤은 실제로 목도했을 것이고, 이전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국정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한번쯤은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나와 함께 서울역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취임식 중계를 보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취임식에 참여했던 시민들 역시 서울역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고,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보여주었다면 이 얼마나 멋진 한편의 드라마인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간 대통령이다. 그런 역사적 의미가 크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노무현 대통령을 환송하는 것은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봤을 때처럼 온 국민이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정치가 '쇼'라고는 하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정치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임식과 취임식을 같이 하지 못한 아쉬움

지난 우리의 역사는 단 한번도 통합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선시대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 그랬고, 붕당 간의 정쟁이 그랬다. 현대사에 들어오면 그는 더 분명해진다. 일제 치하에서는 친일과 반일의 반목이 있더니,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놓고 이념간의 갈등이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의 대치, 여기에 영호남의 지역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번도 통합을 해본 적이 없는 굉장히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지도자가 되면 통합을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경우는 드물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에 성공하지 못했다. 실제로 통합의 의지가 있다면, 또 그래야 한다면,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취임식만은 그렇지 못했다. 취임식만 있고 이임식은 없는 현 상황에서는 전임 대통령은 새 대통령에 밀려 쫓겨나는 아주 볼썽 사나운 모양새가 반복될 뿐이다.

이제 이를 실천할 몫은 5년뒤 선출될 18대 대통령 당선자의 몫이 되었다. 이전 대통령 그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 그가 실천에 옮겨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다음 18대 대통령 취임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임사와 새 대통령의 취임사를 온 국민이 한 자리에서 함께 듣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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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호 숭례문이 잿더미로 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당국은 복원작업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고 까지 하며 복원에 대한 청사진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면, 마치 숭례문 복원을 위해 짜고 치는 한편의 고스톱 판을 보는 것만 같아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또 한편에서는 자발적으로 숭례문 복원을 위한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MBC 무한도전팀이 1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측이 광복회에 2천만엔을 기부했는가하면, 서초구도 성금모금에 나서겠다고 한다. 또 연예인들의 기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이명박 당선자의 말 때문이건 아니건, 국민의 뜻이 모아진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만 이명박 당선자가 그렇게 나서서 할 말도 아니다. 그게 어디 성금인가, 세금이지). 하지만, 문제는 그 성금이 어떻게 관리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MBC 무한도전측은 1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하고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은 2천만엔을 광복회에 기부했다. 서초구는 자체 모금창구를 만들 것 같다. 도대체 성금모금을 어디다 해야하는 건가. 광복회? 서초구?? 아니면 인수위???
상황이 이러한데도 숭례문 복원을 국민성금으로 이루자고 말한 이명박 당선자는 정작 그 성금을 어떻게 걷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뭐하자는 건가, 지금.

국민의 뜻을 관리할 방법은 만들어졌는가

과거 우리 국민은 국가로부터 수많은 성금납부를 강요받아왔다. 각종 수재의연금, 연말 불우이웃돕기성금, 방위비 납부, 독립기념관 건립, 평화의 댐 건축 등등 학교 다니면서 이런 잡부금 한 번 안 갖다낸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런 성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돌아갔느냐를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수재를 당한 사람들은 보상도 받기 전에 이듬해 수재를 겪어야만 했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낸 성금이 그저 막연히 잘 쓰였겠거니 하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독립기념관이 개관 열흘을 앞두고 작업자의 관리소홀로 화재가 발생해 개관을 1년 연기했을 때도, 국민들은 자신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건물의 관리가 그토록 허술했던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우리 국민이 무신경 했거나, 순해서가 아니라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런 풍토 역시 당연시하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참 세상 많이 좋아진 편이다.

성금에 사기당한 안 좋은 추억

이렇게 좋아진 세상에도 성금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에서 모금하는 성금은 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또 앞서 궁시렁 댄 바와 같이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성금모금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과세방법이다. 국민성금모금, 아니 세금징수를 하려면 당당히 국회 동의를 얻어서 시행을 하든지, 아니면 먼저 성금을 내는 모범을 보여주든지... 17세기 시민혁명 때도 욕을 먹었던 짓거리를 아무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는 그 무식한 용기를 지닌 대통령을, 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애꿎은 국민들만 죄인 만드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 있다해도 제정신일까.

17세기에도 욕 먹었던 임의과세, 21세기에 가능할까

기업에서는 CEO는 지시만 내리고 실무는 밑에서 알아서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는 기업처럼 어느 일부 주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5천만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 이익도, 손해도 모두를 위한 것이다. 과거에 기업하던 정신을 가지고 국가운영하는 것까지는 환영한다치자. 하지만 과거에 기업하던 정신머리로 국가운영하다가는 정말 크게 일 내고 만다. 국가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이명박 당선자는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정말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고 싶으면, 그에 대한 국민동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부터 생각하고, 성금모금창구를 단일화하든지, 스스로 성금을 먼저 내든지,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라. 국민은 성공한 대통령보다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을 더 원한다.

국가의 잘못을 국민성금으로 때우겠다는 정부와 국가에서 거두겠다는 성금의 용도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 어쩌면 불에 탄 숭례문보다 더 시급하게 복원해야 할 것은 오래 전부터 깨진 국가와 국민의 신뢰가 아닐런지. 이명박 당선자는 심각히 고민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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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줄곧 '국보1호'라고 배워왔던, 지금까지도 늘 '국보1호'라고 가르쳐왔던 숭례문이 한 사람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가 불 타버렸다.'라는 지극히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TV를 지켜보면서 숭례문이 붕괴되는 그 순간, 내 가슴도 같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아~!!"하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왔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 말마따나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숭례문은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국보1호 숭례문이 타 버린 현실이 아니다. 어찌보면 숭례문이 타 버린 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설 연휴맞이 캠프파이어 하듯 사라진 숭례문

숭례문이 국보1호가 되는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첫발을 내딛은 곳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야심이 숭례문을 조선 고적1호로 지정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옴으로써 우리의 국보1호는 시작된 것이고보면, 국보1호 그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이자 긍지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한, 1961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숭례문은 그 원형을 잃고 말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숭례문은 이미 조선시대 당시의 공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 못하고, 그 모양을 흉내낸 '이미테이션'이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일임에 분명하지만, 역사의 올바른 정립을 놓고볼 때, 숭례문은 어쩌면 커다란 장애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상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가 국보1호로 존재했다는 것, 그것이 이미 국가의 자존심과 긍지를 심하게 훼손한 것은 아니었을까.
국민들 역시 숭례문이 '국보1호'라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숭례문을 볼 때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존재에 마음 깊은 뿌듯함을 느껴왔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애초부터 숭례문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희미했던 사람들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놓고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약간의 '오버'처럼 보이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애초부터 희미했던 국보1호로서의 가치와 의미

모두 타 버린 뒤에야 국보1호의 자존심을 찾는 국민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번 화재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신문과 뉴스를 장식하는 내용들을 보라.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당시 숭례문 개방을 주도했던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해서, 문화재청은 그들대로, 중구청과  소방방채청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사건의 원인규명보다는 이 사건이 자신과 무관함에 대해서만 소명하기에 급급하다. 어찌 이것이 단지 이번 사건에만 그치는 문제랴.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삼풍백화점이 박살나도 누구하나 진지하게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대통령이 된다는 이명박 당선자는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물론, 나름대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1차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 왜 그는 스스로 책임지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걸까. 그저 매사를 BBK 다루듯 하는 그에게 국가의 5년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숭례문 화재보다 더 절망스럽다.

책임회피하는 이명박, 모든 일을 BBK 다루듯

그 가치의 중요성 여부를 떠나 숭례문은 서울이 가지고 있었던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외국인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600년 이상을 지켜온 목조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그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 자랑이 사라져버린 지금, 국민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나.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다시 복원하는 것보다, 모든 국민이 자랑스러워 할 국가의 근본정신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 아닐까. 주변의 모든 일에 책임의식을 갖는 일, 모든 국민의 애국심을 받기에 합당한 국가를 만드는 일, 이것이 불 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하기 전에 되살려야 할 우리의 얼임을 이번 화재로 절실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도 그 가치를 실제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우리의 국보1호 숭례문은 자신의 몸을 산화함으로써 우리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국보1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숭례문이 가지는 국보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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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고, 인수위의 월권에 대해서도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정권 말기의 대통령은 늘 외로운 존재였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이같은 움직임은 마치 우리나라에 없는 국제선 열차를 외국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생소하고 어색하기 이를데 없다. 하지만,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권력을 다 쥔 것처럼 전횡을 일삼으며, 참여정부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하면서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만큼은 5년을 더 가져가고자 하는 이명박 당선자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비겁함에 비하면, 그의 소신은 분명 칭송받아 마땅한 구석이 있다.

칭송받아 마땅한 노무현의 소신

노 대통령의 말대로, 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안을 참여정부에서 통과시켜내고자 하는 것은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실패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자신들의 업적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테지만,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쳐버리고자 하는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새로 출범하고자 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협박을 해댈 터이고, 이로 인해 악화된 국민의 여론을 감안해 대통령이 그들의 뜻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식으로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통령 당선 직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의 행보를 지켜보면 그 섬김의 대상이 '국민'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려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는 5년동안 국민들이 편한 삶을 살지 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이라고 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난 묻고 싶다.
경제파탄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카드 빚이 늘어 신용불량자가 양산된 것이 어떻게 정부만의 책임인가. 신용정보 없이 무분별하게 카드발급을 해 준 카드사, 그리고 발급받은 카드로 규모없는 씀씀이를 보였던 일반인들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것인가 말이다. 삶이 어려우니, 카드빚이라도 얻어서 살아보려 했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의 씀씀이를 줄여보기 위한 노력은 왜 해보지 않았는지 따져묻고 싶다. 정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카드빚도 그림의 떡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종부세 폭탄으로 신음했다고 한다. 종부세가 급격히 오른 것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종부세를 낼 수 있는 여력이 있음을 감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야 말로 어느 광고에서 말하는 대한민국 1% 아니던가?

또, 청년실업이 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말 양심적으로 생각해보자. 오늘날의 청년실업이 구조적 실업인가를 말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대기업만을 선호하고, 공무원 되겠다고 돈벌이 안하고 너도나도 학원으로, 고시촌으로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청년 실업자의 실업문제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처한 자발적 실업이 대부분이다. 남이 한다니까, 해서 좋다니까 아무 생각없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것이다. 절대빈곤자들에게 복지혜택 더 주는 것에 대해서는 '좌파'니 '빨갱이'니 운운하면서, 자발적 실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무능하다고 이야기 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아무런 기준없이 제 멋대로 산다. 그리고는 국가에서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며 원망과 저주를 일삼는다.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우리나라 국민들, 너무나 비겁해졌다. 도무지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르니 말이다.

스스로에 대해 책임질 줄 모르는 비겁한 국민

얼마 전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벌어진 TV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TF팀장은 '국민이 선택한 한나라당의 정책에 대해 만약 그것이 실패했을때는 다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니 우선은 인정해 주고 믿어달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 정당의 핵심인물의 발언치고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되기도 했지만, 내가 설령 정부조직개편안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박 의원의 소신과 열정만큼은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 체면이 있는데, 정책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적어도 박재완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껏 뽑아줬더니, 노무현 만도 못하더라.' 이런 소리 들으면 한나라당 출신으로서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비겁한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설령 업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괴로웠다 하더라도, 국민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명감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이명박, 적어도 박재완만큼만 해라

난 이명박 당선자가 지금과 같은 비겁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권에서 수립한 정책에 대해 떳떳하고 당당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나, 영어몰입교육과 같은 교육정책 등 여론의 지탄을 받는 정책에 대해서, 비록 돌을 맞고 피를 흘릴지언정, 자신의 소신과 철학은 뚜렷이 밝히고 실수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하고 개선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수위의 활동이 이제 한달여 흘렀다. 기대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큰 것이 지금 현재의 여론이다. 하루하루 무슨 얘기가 나올지 불안해 죽겠다는 푸념부터, 집권 시작 전부터 이렇게 휘두르는 정부는 처음 보았다는 분노까지 우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다듬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대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르고 한 행동 속에 그들의 진정한 기본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한달여의 인수위 활동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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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내용을 발표했다. 18부 4처 18청 10위원회의 참여정부 현 조직을 13부 2처 17청으로 대폭 축소한 엄청난 규모이다. '단군이래 최대의 정부조직개편', '1969년 이후 최소의 정부조직축소'라는 자평이 인수위 관계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를 비롯한 차기정부가 우선과제로 추진하는 내용이 '작은 정부'의 실현이고보면, 오늘 발표된 정부조직개편은 그 목표에 상당히 접근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이루었을까?

단군이래 최대의 정부조직개편, 1969년 이후 최소규모

'큰 정부', '작은정부' 문제는 정부조직의 규모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국민에 대한 정부의 권한행사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정부의 규모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운데 하나이다. 근대 야경국가와 현대 복지국가를 구분하는 기준도 정부의 규모라기보다는 국민에 대한 정부의 역할규모였음을 생각할 때, 단군이래 최대의 정부조직개편이 그 규모의 축소만을 놓고 과연 작은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조금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정부규모에 관한 논란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국민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커야 할 때도, 도 작아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은 정부의 국정지표가 '성장'이냐, '분배'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결국 이것은 상황논리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정부개편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 조직규모는 크기가 아닌 권한의 강도로 판단되어야

그렇다면, 차기 정부와 분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현 참여정부의 정부조직규모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차기 정부가 '성장'에 중점을 둔 반면, 현 정부는 '분배'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조직은 외형상 규모는 상당히 많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 분야별로 많은 부분이 각기 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분화되었다. 이는 정부가 국민생활에 실제관심을 두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단, 그 정부의 권한이 국민의 권리를 압박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참여정부는 조직의 분화와 함께 그 권한도 함께 분화되었다. '절대권한'이 존재하지 않는 조금은 낯선 정부, 그것이 지난 5년간 우리가 살아온 참여정부의 모습이다.
결국, 참여정부는 조직의 규모는 커졌으나, 정부역할이 세분화되면서 조직의 권한은 도리어 작아진 모양새를 갖추었다. 다시 말해, 참여정부의 모습은 정부의 규모와 권한이 반비례를 이룬, 이전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적잖이 생소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참여정부의 규모가 크고 방만해 각종규제가 많았다는 인수위의 평가에 내가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에 한해 규제가 있었을 수 있으나, 전체 맥락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규모와 권한의 반비례를 이룬 참여정부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의 의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융합을 통한 규모의 축소'라고 나름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관의 수도 40명에서 29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정부규모가 줄었다고 해서 정부역할이 줄었다고 할 수는 없다. 차기정부의 장관 29명은 참여정부에서 40명이 갖고 있던 권한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는 축소되었으나 권한은 더욱 강화된 것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정부의 규모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역할규모임을 생각할 때, 장관 한 명이 국민에 대해 갖는 권한은 실로 막강해진 차기 정부가 단지 규모의 축소만을 놓고 작은 정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이명박 당선자 특유의 또 다른 '조삼모사'는 아닐까.

규모는 작지만 강력한 권한, 과연 정부는 작아졌는가

또한, 인수위는 이번 정부조직개편으로 '정부규모는 1969년 이후 가장 최소'라고 발표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1969년 이후 지난 39년간 사회 분화로 사회는 굉장히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그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의 요구를 39년전의 정부규모로 모두 처리하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작은 정부가 지닐 권한은 상상하리 어려우리만치 엄청나다. 바람직한 거버넌스는 기대하기도 힘든 일이다. 국민과의 소통은 그림의 떡이다. 당,정,청 일체화를 통해 대권과 당권을 모두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려는 듯한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를 생각할 때 차기 정부의 권한 강화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이전보다 권한이 막강해진 정부를 두고 그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정부'라고 한다면, 그건 작은 정부가 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걱정스럽기만 한 이명박의 제왕지상주의

앞서 설명한 대로 정부조직의 규모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는 정부의 국정지표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성장'을 선택했다. 과거에 성장을 지향했던 정부에서 보여준 그 무소불위의 힘을 우리는 아직 기억한다. 대학원 시절, 공기업 간부로 일하시던 한 분께서는 '한국 경제가 조금 더디 발전하는 문제가 생긴다 해도 절대 겪어서는 안되는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아직까지 '성장'을 고집한다는 것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스스로 제왕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이것은 그를 지지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그 앞에서 도덕성을 논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긴 하다). 우리의 성장은 이제 안정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지금은 성장보다는 분배를 이야기 해야 할 때다. 안정에 접어든 성장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성장 이외의 다른 국정지표에 대해서는 펀더멘털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자인인 셈이다.

노무현이 싫어서 뽑았다는 이명박. 그러나 이제는 그가 노무현보다 더 싫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아직 취임하지도 않았는데, 걱정만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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