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이틀 퇴장사태로 프로야구판이 시끄럽다. 잠실에서 열린 한화-LG 3연전에서 2차전에는 LG 이병규 선수가, 3차전에서는 한화 한대화 감독이 퇴장을 당한 것이다. 원인은 모두 올해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 때문이란다. 올해 퇴장조치를 받은 8명 가운데, 6명이 바로 이 스트라이크 존 시비로 퇴장을 당했다. 이쯤 되면 새로 바뀐 스트라이크 존과 그 적용의 일관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심판에 따라 그 판정이 애매하니 판정시비는 계속 늘어나기만 하고, 해결국면은 찾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보는 이를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퇴장에 있어 선수, 감독을 가리지 않는 심판의 밑도 끝도 없는 권위주의이다. 최근 한국야구에서는 경기 룰을 어기면 퇴장이 아니라, 심판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퇴장인 것이다.

심판 기분을 상하게 하면 퇴장?

그제 한화-LG 2차전에서는 전일수 주심이 LG 이병규에게 "너 지금 '야'라고 했어?"라고 하는 입모양이 방송을 통해 그대로 나타났다. 평소 전일수 주심과 이병규 선수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기의 흐름보다 개인감정이 적잖이 작용한 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제 3차전에서는 투수였던 한화 데폴라의 행동이 이영재 주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데폴라의 어떤 행동이 이영재 주심을 자극했는지는 반복해서 상황을 살펴봐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는다. 대상 선수가 외국인 선수였다는 점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경기장 내 심판의 어설픈 권위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이영재 주심이 과거 선수시절 포수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감각도 다른 선수출신 심판들에 비해 더 예민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주심이 예민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스트라이크 존이지, 자신의 판정에 대한 선수의 반응은 아니지 않나. 또 그런 행동 때문에 자극을 받았다고 아무런 이유없이 타임을 걸어 경기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바닥에 침까지 뱉어가며 선수를 노려보는 행동은 심판으로서 그의 마음가짐이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해주는 단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판정보다 판정에 대한 반응에 더 민감한 주심

물론, 선수든 감독이든 심판에게 부당한 도전을 했을 경우에는 퇴장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같은 문제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퇴장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합리적었는가 반성하기 이전에 절대권한의 침해라는 이유만으로 퇴장을 남발하는 심판들의 행동은 그리 곱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권한을 행사하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다. 과연 심판들은 심판으로서의 절대권한을 행사하는데 있어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변경된 기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 하더라도,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슬그머니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노(老) 감독의 한마디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이런 무책임한 행동을 집단적으로 행사하면서 그의 판정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라고 하면, 정말 억지 아닐까?

현 정권이 본을 보이지 못해서 신성한 스포츠까지 이 모양 이 꼴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명백히 소명할 수 있는 근거는 이성적으로 챙겨가면서 행동하는 것이 어떨지. 이번 한화-LG전에서 퇴장명령을 내린 두 심판(전일수, 이영재)은 선수시절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분풀이로 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다만, 이들은 심판의 정당한 권한을 매우 감정적으로 행사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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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속에 6.2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결과를 놓고 보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참패하였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엄청난 약진을 하면서 2004년 총선이후 최대의 선거결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결과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개표 중반부터 꾸준히 선두를 유지하던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막판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0.7% 포인트의 너무나도 근소한 패배. 오세훈 후보도 시인했듯이 이것은 오세훈 후보가 '사실상 진' 게임이다.
오세훈 후보가 '사실상 졌다'고 시인했으면, 한명숙 후보는 '사실상 이긴' 상황인데 나는 한명숙 후보는 사실상 이겼더라도, 한명숙 후보와 함께한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오세훈 후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진' 것이라 평가하고 싶다. 개표상황 내내 그들이 보여준 실망스러움은 한명숙 후보의 선전을 희석하고 말았다. 무엇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까?

한명숙 후보의 선전을 희석시킨 한명숙 후보캠프

TV와  선관위 홈페이지 그리고 한명숙 후보 홈페이지를 번갈아 살피면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한명숙 후보 홈페이지의 자체 TV생중계에서 밝힌 선관위 공식집계와는 달랐던 그들만의 개표현황이었다.
 
그들만의 집계현황은 개표율은 선관위의 공식집계보다 약 3%정도 앞선 것이었고, 2위와의 표차도 선관위의 공식집계보다 무려 25,000표 가량 더 차이가 나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의 전체 유권자 약 827만명 가운데 투표자 수가 약 440만명이었음을 감안할 때 3%라면 대략 13000표. 그 3%가 모두 한명숙 후보의 표라 해도 이것은 수치가 안 맞는 것이었지만, 방송을 담당하는 VJ들은 개표현장에 파견된 요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서 그 말은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선거캠프에서, 그리고 서울광장에서 두 차례씩이나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면서 '이 추세라면 아침무렵에는 약 15만표 차이로 당선이 확정될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이해찬 전 총리라면,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 선거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겪었을 사람 아니던가. 그가 내 놓은 분석은 그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수치상 앞뒤가 안 맞는 계산에 대해 어느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지지자들은 서울 광장에 모여 15%남짓 개표된 결과만으로 이미 승리를 확신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한명숙 후보는 짐짓 신중하고자 했으나, 캠프에 있던 다른 지지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고, 성급했다.

나는 당시 한명숙 후보 캠프에서 내놓았던 그들만의 개표현황이 억지로 조작된 사실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표 내내 한명숙 후보가 8천표 이상 앞선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들만의 개표현황이 상당히 왜곡되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왜곡된 그들만의 개표결과

과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목적과 이념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실패한 정부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는 차가운 이성을 외면한 채 너무나도 뜨거운 가슴만으로 그들의 목적과 이념을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수구세력의 눈에 과거 냉전시대에 죽창을 들고 덤비던 '좌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억울하되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현재 민주세력의 상대는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다. 잔꾀에 능한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일은 한두번에 끝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 속에 전략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그들이 억지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그래도 이길까 말까한 승부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왜곡된 결과물을 마치 사실인양 공개하는 것은 MB정권의 독재만큼이나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개표결과의 왜곡에 대해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이번 선거가 감정적으로 그럴만한 게임이라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으며, 그런 사소한(?)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아웅다웅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보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자. 그 모습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릇된 행동은 민주세력을 시샘하는 많은 적들에게 또 다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냉정함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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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현행 투표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것을 내용으로 한 공직자선거법 개정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원한다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오늘 밝혔다. 이것은 민주당이 지난 3월부터 당론으로 지정하고 추진해 온 공직자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전병헌 의원은 "되도록이면 이번 6월의 지방선거부터 고등학교 3학년에 준하는 18세 청소년부터 교육감 및 지자체장을 선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나는 원론적으로 민주당과 전병헌 의원의 이같은 견해에 동의한다. 보다 많은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선거연령의 확대는 가능한 한 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 연령의 확대 이전에 지금 이 결정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에 대해 신중히 고민한 결과였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봄 직 하다.

선거연령의 확대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

개정안대로 만18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고 치자. 10대 연령층의 유권자 가운데서 선거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선거에 대한 수요가 많고, 투표참여에 대한 요청이 빗발치는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레 이 부분부터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과연 선거연령 확대는 대상연령자들이 원하는 바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무작정 선거 연령만을 확대하여 놓고 정작 참여를 독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투표율 저하로 인한 국민의 정치 무관심 증대에만 기여할 뿐 실제 10대의 정치의사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기성세대가 짐작하고 있는만큼 현재 우리나라 10대의 정치의사결정능력이 유효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명민하고 영리한 우리의 10대들은 그 생각도 참신하고 독특하다. 이들의 창의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10대들은 바람직한 사회와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실제적으로 고민할만한 기본 바탕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입시현장에서 10대들을 수년간 지켜봐 온 내 견해이다.

이것은 10대들의 교육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손을 대는 것이 입시제도이고, 그 입시제도에 10대들은 아무 저항없이 끌려다니기만 했다. 제대로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다보니,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편의주의가 교육현장에 만연하게 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바람직한 기본 바탕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우리의 10대에게 이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자격을 준다는 것은 갓난 아이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갓난아이의 손에 칼부터 쥐어주는 무모함은 피해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거연령의 확대는 가능한 최대로 이루어져야 함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선거연령의 확대로 인해 발생하게 될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아무런 근거없이 그저 10대들에게 선거권을 주자고 외쳐대기 때문에, 그동안 민주세력의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거연령을 확대하여 10대에게도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이 사회의 현상에 대해 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바탕을 심어줄만한 제대로 된 교육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입시에서의 승리를 성공으로 간주하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이러한 시각을 갖춘 건전한 젊은이를 양산해 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자면,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 복잡한만큼 전략적이어야 한다. 전병헌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의 신중한 자세를 다시 한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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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초계함 천안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한 지 나흘이 지났다. 사고의 원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실종자 대부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함미 부분이 발견이 된 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 당국은 함미를 두드려 본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난 우리 군이 그리 유능한 집단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무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한다고 하더라도, 침몰원인규명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종자 가족이 이야기 했단다. 앞으로 절대 자신의 자식들을 군에 보내지 않겠노라고. 내 자식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 하더라도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지난 1987년11월29일에 있었던 KAL858기 테러사건이었다. 이 생각이 왜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KAL858기 테러사건 VS. 천안함 침몰사건

KAL858기 테러사건은 115명의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간 엄청난 테러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사고원인 발표는 현 시점에 이르러 하나하나씩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범인으로 지목된 김현희의 경우 1972년 남북 적십자 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남측 장기영 단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해 준 소녀라는 사실은 확인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런 정부의 대응은 이 사건이 북한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당시 전두환 정권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군사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이 사건을 십분 활용한다. 대통령 선거 1주일 전, 범인으로 지목한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를 서울로 압송하고, 그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국민의 불안심리를 조성하여 당시 여당인 민정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음은 이제 알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천안함 침몰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기 충분한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현 정권이 세종시 문제 등 일련의 현안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과거 지방선거와 같은 압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입장에서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골몰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 돌파구를 위해 만든 자작극이 바로 '천안함 침몰사건'이라면 더 이상 정부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할 이유가 더 있겠는가. 정부에 대해 반발한다고 해서 '좌파'라 매도하겠는가. 젊은 청춘의 피값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연명을 일구려는 정부를 신뢰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손에 좌파가 되는게 더 나을 것이다.

현 정부는 젊은 청춘의 피값으로 정치생명 이어가려나

그렇게 찾아헤매던 함미부분을 발견한지 이틀이 다 되도록 함미 안에 들어가지도 않은채 겉에서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더라는 이야기만 거듭한다. 수심 40M 지점이라면, 숙달된 해군 잠수요원에게 그리 깊은 지역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조류가 심했다고? 날씨가 안 좋다고??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서 구조가 어렵다고??? 그럼 우리나라 국민들은 조류타령, 날씨타령, 시계타령하면서 할 일 미루고 있는 무능한 해군에게 이 나라 안위를 맡기고 있었다는 말인가. 툭하면 정신력 운운하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군인들의 정신력이 왜 이런 위급상황에는 보이지도 않느냐는 말이다.
유족이 아닌 입장에서 바라봐도 실종자 수색에 대한 군 당국 및 정부의 대응은 그 무성의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상태가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이 쯤되면 이것은 실종자를 못 찾는게 아니라, 안 찾는 것이다.

성의 없는 군 당국, 실종자 수색 못 하나 안 하나

천안함 사건 생존자 및 제2함대 대원들에게는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군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군 당국 및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갖기 힘들어졌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군과 정부를 어떻게 믿고 신뢰하란 말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 너무나도 분명해진 한 가지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애국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너무나 절망적인 현실이다.

우울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 나는 그저 위에서 언급한 나의 억측이 억측으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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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12월12일 토요일.

집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에서 지하철 환승을 한 나. 종각역까지 와서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댔다.

'삑삑삑~!'
에러다. -_-

옆 칸으로 옮겨 다시 나가고자 했다.

'삑삑삑~!!'
또 에러다. -_-;;

그러자, 자원봉사대 복장을 하신 할머니가 오신다.

할머니 : "왜 그러세요?"
붕붕 : "나가려는데 단말기 오류가 나네요."
할머니 : "제가 처리해 드릴께요. 카드 줘 보세요."


교육을 단단히 받으신 듯 하다. 손자뻘 되는 사람한테 꼬박꼬박 존칭을 쓰시는 자원봉사 할머니.
내 교통카드를 받아서는 어디론가 향하시는데...

#2

'삑~!!'

할머니는 옆 칸 입구의 단말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단말기를 가져다 대셨다.
예전에 종이승차권 쓰던 시절도 이런 일이 생기면 대개 관리자용 패스가 등장하곤 했으니, 그 단말기도 그런 오류를 정산하는 단말기려니 생각했다.
할머니는 다시 카드를 내게 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할머니 : "이제 다시 한번 찍어보세요."
붕붕 : "네" (카드를 찍는다.)


'삑~!!'
그렇게 출구를 나온 나는 할머니께 다가갔다.
 
#3

아까 자원봉사 할머니가 내 카드를 단말기에 대는 순간,
나는 보았다.
단말기에 찍힌 선명한 붉은 숫자 '900'을.
그것은 요금 900원이 부과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할머니께 이렇게 물었다.

붕붕 : "할머니, 감사한데요. 저는 지금 환승을 해서 왔는데, 할머니께서 카드를 찍으시는 바람에, 전 졸지에 900원을 손해보고 말았네요, 어쩌죠?"


그러자, 이 할머니, 생글생글 웃으시며, 내 입장에서 볼 때, 어처구니 없는 말씀을 하신다.

할머니 : (매우 상냥하게 웃으시며) "손해봐봐야 900원인걸 뭐..."
붕붕 : "아니 할머니, 900원이 아니라 90원이라도 왜 이유없이 그냥 손해를 봐요..."


할머니는 그냥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웃기만 하신다.

#4

난 알고 있다.
이건 이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할머니는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돕기 위해 당신이 알고 있는 한 최선을 다해주셨다는 걸.
그래서, 그 할머니에게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할머니 : "버스나 환승하면서 카드 잘못 찍은 거 아니에요?"
붕붕 : "이건 분명히 단말기 오류란 말이에요. 여기까지 오면서 카드 분명히 다 찍은 거 확인도 했구요. 나 역장님 만나야겠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교통카드 사용내역은 인터넷에서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어제 사용일까지만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규명하려면 하루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다음날은 일요일이다.....-_-;;;

역장님을 만나야겠다는 내 말에 난처해 하시는 할머니께 난 이렇게 말씀드리고 역을 나왔다.

붕붕 : "걱정마세요, 할머니. 제가 역무실에 확인할께요. 감사합니다."



#5

시간은 흘러 월요일.
T-money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그런 오류는 역에서 정산작업을 거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해당 역으로 가서 직접 해결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나는 몰랐다 치자.
그 할머니는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역무원들은 그 노인분들께 그런 사실을 교육시키지 않았을까??
교육시켰다면,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는지에 대해 왜 관리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6

그리고 오늘.

종각역에 도착해서 역무실을 찾아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역무원이 내게 이렇게 따지듯 묻는다.

역무원 : "손님께서는 이 일 말고도 역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디로 오셔야겠어요?"


이건 지금 왜 그 당시에 역무실로 안오고 이제와서 따지느냐는 식이다.
물론 불쾌하겠지.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게 지금 나한테 짜증낼 일인가. 손해를 본 건 엄연히 난데.
나 역시 불쾌감을 애써 참지 않았다.

붕붕 : 그럼 지금 개찰구에 계시는 자원봉사 할머니들은 이 곳에서 교육해서 배치하신 분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분들이 실수해서 벌어진 사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사흘이 지나서 이 곳에 온 것은 혹시라도 그것이 나로 인한 실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고, 그게 내 실수가 아니란 걸 확인한 다음에 오게 된거란 말입니다~!!

 

역무원 : "잠시 저 좀 따라와 보세요."


그리고는 역무실을 나가는 역무원.
저 사람,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걸까?

#7
승강장 출입구에 서서 그 역무원은 내게 말했다.

역무원 : "손님께서 겪으신 일은 분명히 저희들의 실수로 빚어진 일입니다. 따라서, 요금은 환불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역무원 : "젊으신 분이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건데, 역 단말기 밑에는 이렇게 단말기 오류 코드 목록이 있어서 코드번호에 따라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단말기에 오류가 생겼을 경우에는 이 코드를 반드시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역무원 : "정부시책에 따라서 노인분들을 자원봉사자로 고용은 하는데, 노인분들이라 그런지(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아무리 교육을 해도 잊어버리신단 말입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꼭 단말기 오류 코드를 확인하시고, 그 할머니들께 역무원을 불러 달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리고는 자기 주머니에서 현금 900원을 꺼내 내게 돌려주었다.
부당청구에 대한 환불절차도 없이, 그렇게 상황은 끝이 났다.

그런데, 이 상황.... 정말 끝난 것일까?

그 역무원은 시종일관 자신이 짜증 났음을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서비스 정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그 역무원은 내게 '분명히 단말기 오류코드가 있는데 왜 그걸 확인도 안하고 그런 일을 만들었느냐'는 식의 핀잔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천만 서울 시민 가운데, 그 단말기 오류코드가 단말기 밑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

지하철 개집표기 장애코드. 이제는 이런 코드 외에 한글안내가 친절하게 나온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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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메트로는 스토리텔링 광고도 잘하던데, 정책홍보도 그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나도 당하면 당황스러운 일인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겪으시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900원 손해보고 말지 않을까.

부당청구 되었던 900원을 받아들고 나왔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AND

집에 돌아오는 새벽, 차 안에서 굉장히 낯선 구조물을 하나 보았다. 광화문 광장 맨 끝자락에 놓은 20~30M는 족히 됨직한 저 큰 구조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세종로로 들어서니 옆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스노보드대회를 한단다. 서울 중심 한 복판에서. 발상 자체가 기발함을 넘어서 뭔가 모를 황당함을 가져다 준다.

낯설어라, 서울 한 복판의 스노보드대회

내 눈에 낯설다는 느낌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스노보드대회를 위해 설치해놓은 구조물을 보면서 난데없이 그 앞에 앉아계신 세종대왕이 왜 그리도 측은하고 안 쓰럽게 느껴지던지. 국제대회니까 외국 출전자도 많을텐데, 전 세계가 칭송하는 국가 지도자의 동상 뒤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재주를 넘으며, 심지어는 발길질까지 해대는 모양을 연출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인 듯 하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황당해라, 세종대왕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발차기와 재주넘기

뚝딱뚝딱 우리나라는 설치구조물 만들어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행사를 위한 무대셋트 설치부터 공사현장 지지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뚝딱뚝딱 짓고 만드는데는 하여간 검증된 실력을 뽐내는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높은 구조물을 만들었다는데,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 한 복판인가, 그것도 도심 한 가운데 세종로 광화문 광장이다. 많은 차량과 유동인구로 늘 붐비는 곳.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연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더 이 곳을 찾는다. 스노보드대회가 열리면, 관중들도 많이 올텐데.... 그럼 애먼 서울시민만 교통지옥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왜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 스포츠도 아닌, 고급 레저스포츠 행사 때문에 교통지옥이라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걸까.

영화 '국가대표'가 꽤 인기 있었다고 한다. 스키점프라는 비 인기종목 선수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에 편승해서 도시를 알리고자 유사한 스노보드대회 행사를 기획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럼 그토록 스키점프 선수들이 간절히 원하던 스키점프시설도 저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스키점프시설은 무주리조트에 단 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생긴지 10년쯤 된 것 같다. 지난 수십년간 스키점프시설을 요청해도 오만가지 이유를 들어 안해주던 정부(그것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에서, 그 오만가지 핑계를 뒤로하고 그 웅장한 시설을 도심 한 복판에 내놓는 건, 비 인기종목의 설움 속에 묵묵히 자신의 종목에 최선을 다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을 그야말로 두 번 죽이는 일은 아닐까. 무한도전이 봅슬레이 국가대표 되었더라면, 북한산에 봅슬레이 경기장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이다.

장하도다, 무한도전이 북한산을 살렸구나

세종대왕 뒤통수에 하이킥 날릴 생각 하기 전에, 생각 좀 하자. 그 스노보드대회가 천만 시민에게 불편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거행해야할만큼 국익이나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만약 객관적으로 그러하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88올림픽때 소매치기도 영업(?)을 중단했다던 한민족이다. 그리고, 비싼 예산 들여 조성한 광장이면, 모두를 위해 유익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집회나 시위는 컨테이너 쌓아가며 막아대면서,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스키점프대회장으로 공공시설을 줏대없이 굴려대면서 무슨 놈의 민주주의 타령이냐, 나라팔아 돈 버는 장삿꾼이지. 이 행사 기획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노린다면... 오세훈, 당신도 정말 명박스럽기 그지 없다. 가뜩이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거가 마냥 불편한 광화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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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참으로 반갑기 그지 없는 소식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에 들러 세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 2007년 11월,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시아권 국가 언어는 일본어, 중국어 서비스가 전부였다. 나는 안내직원에게 "왜 한국어 안내 서비스는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내직원은 "외국어 안내는 이게 전부"라는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GDP도 낮고, 또 일본 문화의 원류는 한국의 문화인데, 이런 후진국들에 대한 안내는 하면서, 한국을 위한 안내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안내원은 매우 난처해 했다. 내가 너무 민감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을거고, 또 내 영어가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안되는 것이 어찌 안내 직원 탓이겠는가.

그랬던 대영박물관에서 이제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제공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때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 참 흐뭇하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이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조선 당백전을 만나다

대영박물관에는 고대 유적부터 시작해서, 그러한 유적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한참을 구경 하다가, 나는 맨 마지막 관람코너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고대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화폐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의 관리 아래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도록 허락해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당백전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유물을 보다니. 난 너무 기쁜 나머지, 은행근무경력이 있다는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이 동전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동전'이라고 자랑을 했다. 그랬더니 그 자원봉사 할머니는 나에게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지금도 그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Are you Japanese? (일본 사람이에요?)"

이게 웬 지렁이 이단 옆차기 하는 소리냔 말이지. 난 한국사람임을 밝혔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들을 지도하는 사회과 강사인데,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모르고 어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겠냐는 나름의 전문성까지 부각 시켜가며, 설명을 했건만, 이 자원봉사 할머니는 내 말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지나가던 한 관람객이 보았다. 그 관람객은 자원봉사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원봉사 할머니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이 한국 젊은이가 이 동전을 자기네 나라 동전이라고 우기는군요."

그 관람객은 내게 진짜 그렇게 말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이 관람객, 너무나도 당연한 듯 이야기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그 동전은 일본 동전이 맞다고 말이다. '남대문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안 가 본 사람이 더 잘 안다'더니, 딱 그 짝이다. 꼭 다리 세 개 가진 사람들 사이에 두 다리만 가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조선의 당백전을 일본의 것이라 알고 있는 대영박물관

한국에 대한 역사왜곡이 아무리 심하다 한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식민역사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백전은 조선, 중국, 일본 모두가 발행된 적이 있는 화폐이다. 그 중 조선의 당백전과 일본의 당백전은 그 모양이나 색깔부터가 판이하게 달라서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건 역사를 공부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제 대영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된다고 하니, 그러한 역사 왜곡도 바르게 잡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반크, 도와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좌측이 조선의 당백전, 우측이 일본의 당백전입니다. 일본의 당백전은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원형의 조선의 당백전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본 건 분명히 원형이었다구요~!!! ㅡO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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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기에서 SK와이번스에게 승리하여 3승2패를 기록한 기아타이거즈는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오늘 경기의 결과에 따라 우승을 할 수도, 또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이 기아 타이거즈라는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기아타이거즈는 그 전신인 해태타이거즈가 1997년 우승한 이래로 작년까지 11년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동안 한국시리즈에 오르기만 하면 무조건 우승이었던 팀이 무려 11년간 한국시리즈 문턱을 밟지 못하다가 올해 한국시리즈에 오른만큼 기아타이거즈 선수단이나 팬들의 우승을 향한 열망도 정말 크리라는 짐작을 가져본다. 굳이 기아타이거즈 팬이 아니라 하더라도,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우승에 박수쳐 주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까. 20년 동안 숱한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루었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그쳤던 삼성라이온즈의 우승열망과는 차원이 다른 이들의 우승에 대한 그리움이 이제는 풀릴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되는 오늘이다.

12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오른 기아 타이거즈

 만약에 기아타이거즈가 우승한다 가정한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조범현 감독에게 이런 바램을 가져본다.
일본어로 '도아게'라고 한다 들었다. 투수에게 우승의 마지막 순간을 던지게 하는 일. 승부가 거의 결정난 시점이라면, 그 도아게를 이대진에게 맡겨주시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다.
물론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것 모르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뀌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더욱이 상대는 올해 3연패에 도전하는 타고난 지략가 김성근 감독의 SK와이번스다. 하지만....
나는 패전처리가 아닌, 당당히 우승을 확정짓고 환호하는 이대진의 모습을 보고싶다. 그것은 단순히 한 선수의 영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범현 감독, 이대진에게 우승을 확정짓게 하라

이대진은 과거 해태시절부터 지금 기아타이거즈에 이르기까지 팀의 디딤돌이자 전설이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재기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그는 이종범, 장성호와 더불어 1997년 타이거즈의 마지막 우승을 이루어낸 몇 안되는 현역 주인공 중 하나이다.
그는 7년여의 재활에도 꺾이지 않았고, 올해 드디어 통산 100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의 통산 100승은 다른 어떤 선수들의 100승보다 더 값지고 의미있는 결과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에 그렇다. 기아 팬이 아니더라도,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난 그가 우승을 확정짓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다섯. V10은 그에게 마지막 우승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그가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하늘에서 더욱 기뻐할 故 김상진을 생각해보라 .... 그런 까닭에 나의 바램은 더욱 그 간절함을 더한다.

조범현 감독, 당신의 첫 홈런을 기억하십니까?

기아타이거즈의 조범현 감독은 현역시절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다. 수비에서는 역대 최고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만수, 박경완과 같은 공격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현역시절 데뷔 첫 홈런을 쳤을 때의 일이다. 그 홈런볼을 주웠던 사람은 당시 한 초등학생이었다. 파울볼을 주워도 기분이 날아갈 법한데, 홈런볼을 주웠으니 그 기분이 오죽했을까. 그런데 이 학생은 후에 자신의 홈런볼을 가져다 준 선수가 조범현 선수이며, 그 홈런은 조범현 선수의 데뷔 첫 홈런이라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다. 그리고는 생각했단다. '이 홈런볼은 자신보다는 조범현 선수에게 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 홈런볼은 그래서 조범현 선수에게 전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미담으로 전해들었던 적이 있다.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 하지만, 만약 그럴만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범현 감독이 현역시절 받았던 그 미덕을 이제는 한번쯤 베풀어 볼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사실 어제의 경기는 지나치게 승부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데서, 개인적으로는 양팀 모두에게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가 승부를 빼면 뭐가 남겠냐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야구는 인정머리 있다는 소리 한번 듣는다고 스포츠 정신이 훼손될 것 같지는 않는다. '조갈량'이라 불리는 조범현 감독의 '아량'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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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업계 사람들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지난 20일 오후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열린 '학원교육말살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학원교육자대회'에서 주최측인 한국학원총연합회는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 말살정책에 강력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고 한다. 전국의 학원관계자 약 1만여명이 참석했다는 이 대회, 자칭 교육인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들의 행동은 얼마나 교육스러웠을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질펀하게 욕 한마디 해보련다.

소도 웃고 갈 자칭 교육인들의 투쟁

이들이 집회현장에서 떠들어댄 말들을 살펴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한 번 보시라.

노동계에서 분신하면 열사라고 부르는데, 학원계에서 열사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말했단다. 어디다 대고 자신들의 행동을 전태일에 비유하나. 과거 전태일 열사가 노동현실에 대해 고민했듯,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면 몰라도. 돈에 환장해서 되도 않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 꼬셔댔으면서, 무슨 선구자나 되는 양 거룩한 척한다. 그 거룩함으로 학원장하지 말고, 차라리 목사해라.
또 그렇게 분신해서 열사 소리 듣고 싶으면, 분신해라. 안 말린다. 분신하고 열사소리도 못들으면 정말 개망신이겠지만. 하지도 못할 일을 운운하면서 참여자와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 교육자의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어디가서 교육업 종사자라고 명함도 내밀지 마라.

일본이 잘 사는 건 학원이 우리보다 5~6배 많아서 잘 살고 있고, 북한이 못 사는 건 학원이 없어서라고 이야기 했단다. 그럼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학원이 있어서였구나. 사회 교과서 다시 써야겠다. 이런 몰상식한 강사들에게 교육을 맡기는 학부모들이 불쌍하다. 혹시라도 이번 집회에 참여하느라 자녀들의 학원이 하루 휴강했다면, 그 학원 당장 그만두시라. 학생들 걱정한다는 그들이 떠들어댄 말이 이 정도라면, 과연 내 자식을 맡길만 한지.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칠천만 잠들었을 때, 학원 형제 깨어있었다고? 누가 깨어있으랬다고 투정인가. 정부가 시켰나? 그건 엄연한 시장원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니었나. 또, 공교육 프로그램이 저렴해서 학부모가 몰려드는 것 역시도 가장 기본적인 시장원리에 근거한 일 아니던가. 그게 정 못마땅하시면, 저렴한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거시던지. 요즘 방과후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의견은 대부분 우호적이다. 학생의 만족도도 꽤 높다. 가격도 저렴하고, 또 나름 유익하기 때문이다. 학원과 비교해서, 억지로 학부모가 끌어다 놓는 것보다, 학생 스스로 선택하여 듣는 경우가 더 많다.

북한과 맞서 싸워 서울을 지켜낸 것처럼 정부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내겠다니... 현 정부를 북한과 동일시하는 무모함은 적어도 현 정부에서만큼은 피하셨어야지. 정부파괴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한대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노무현 정부 5년만 견디면 좋아질 줄 알았더니,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는 문상주 회장님, 그렇게 학원탄압하던 정부 여당에 공천받으려고 불철주야 뛰시던 때는 잊으신 모양입니다.

이래저래 하는 말들을 모아보니, 소도 웃을 소리를 가지고 아주 생쑈를 하신다. 학원업계가 요즘 무지 한가한 모양이다.

한편 이번 집회에 약 1만여명의 학원관계자가 모였단다. 이들 중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서울지역 사람들은 학원 하루 쉬는 낙으로 발자국 한번 찍고 도망갔을테고, 지방 사람들이야 공짜로 서울 나들이 한다치고 오지 않았을까. 과거 학원관계자들의 집회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한번 해보는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전국의 학원관계자가 얼마나 되는데, 단지 1만여명을 가지고 대표성을 운운하는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한심한 노릇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사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의 위기는 어린아이 곶감 빼먹듯 지금까지 쉽게 걸어온 길의 방향전환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교육은 공교육의 영역을 침범하여 공교육을 사정없이 유린해왔다. 과거 학과목 관련 사교육은 공교육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곳(재수생, 검정고시생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사교육은 예술감각을 기르기 위해 피아노를 가르치고, 미술을 가르치고, 발표력을 신장하기 위해 웅변을 가르쳤으며, 수학실력을 키우기 위해 주산을 지도했다. 과거 사교육 어느 구석에서도 지금처럼 대놓고 공교육의 학과목을 액면 그대로 가르치는 일은 없었다.

사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과거에 그러했듯이, 공교육의 영역을 대놓고 침범하는 구습을 버리고, 보다 창조적인 방법으로 학생교육에 이바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민을 안해서 그렇지, 조금만 고민하면 방법은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다.

나는 지난 12년동안 학원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때문에 사교육의 현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정확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사교육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나 그렇듯, 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영역은 예전 사교육이 그러했듯이, 공교육의 영역과 겹쳐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를 그대로 학원에서 대놓고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들의 말대로 세계에 한국처럼 사교육을 규제하려는 정부는 없다. 하지만, 세계에 한국처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를 그냥 대놓고 가르치는 사교육도 없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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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허경영 신드롬’의 기세가 무섭다. 그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의 백악관 만찬회동설, 박근혜 전 대표와의 약혼설 등 여러 가지 루머를 스스로 양산해더니, 이 때문에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기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출소 후 그는 음반 “Call me”를 발표하더니, 지난 9월18일에는 홍대브이홀에서 자신의 콘서트 "Right Now"를 성황리에 개최하는 등 파격행보를 통해 대중의 인지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현 시점에서 허경영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만큼 그의 대중 인지도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기이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기이한 인간 허경영의 기이한 신드롬

사실 그의 홍보 가운데서 신뢰할만한 구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또 그 내용을 입증할만한 여지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이병철 회장의 양자로 입적 되었었다'라든지, '새마을 운동을 자신이 건의했다'는 주장도 실증할만한 근거가 없어 그저 ‘믿거나 말거나’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허경영은 이러한 인간의 불확실성이 결국 맹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럴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1%라도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그의 논리는 어디에서든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의 관심 속에 진정한 자신의 추종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또한 미미한 수준이나마 현실화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기행 속에서 그는 그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암암리에 대중들에게 역설한다. 자신의 콘서트의 수익금을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가 기행만으로 관심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홍보에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상당히 잘 이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불확실성을 맹신으로 연결하려는 허경영 신드롬

그러나, 그가 인터넷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기행만큼이나 파격적이지는 못하다. 그것은 자신의 기사나 의견에 달리는 댓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두드러진다. 그가 지닌 사고의 메커니즘은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상식적이고 건설적인 비판도, 때론 무지몽매하고 저속한 악플도 그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저 그는 자신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만 필터링 하여 이에 반응한다. 자신에게 반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형사고발도 서슴지 않는 민첩함을 보인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언급된 자신에 대한 내용과 관련하여 방송관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감탄고토(甘呑苦吐)를 일삼는 언론에 대한 허경영의 태도는 늘 문제가 되고 있는 현 정부의 소통단절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이다.

허경영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광도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허경영은 그저 단순히 기행을 일삼는 엔터테이너일 뿐이다. 만일 허경영이 201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고 가정해보자. 지금의 열광이 그 때까지 지속된다고 가정하고, 과연 그는 15%이상의 국민 지지를 얻어 지난 대선 때와는 달리, 선거공탁금 6억원을 회수할 수 있을까? 대통령에 당선되고 안 되고를 떠나 그 부분부터 생각해보아도, 현재 그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그 진정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그를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현 정부와 다를바 없는 허경영의 소통방식

만일 허경영 스스로가 자신을 향한 대중의 반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거나, 이와는 반대로 대중이 허경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치킨게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허경영의 신드롬을 지켜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러 가지 구설에 휘말리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가진 나름대로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의 일관된 기행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구조가 너무도 비상식적이고 주먹구구식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즉 기성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거느니, 차라리 허경영과 같은 사람에게 열광 한번 하면서 속풀이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허경영의 콘서트를 기획한 공연기획자 탁현민씨의 회고는 이러한 감정이 스스로에게도 존재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든 아니든, 그가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배짱 하나는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배짱이 솔직함과 국민을 향한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현실에 이치에 부합하는 논리를 가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행동은 어떤 것이든 기행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며, 객기 이상의 평가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건강한 정서로 이해 가능한 조그마한 진실함과 진정성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 속에 그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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